[엄상익 칼럼] 우리 시대에 왔다 간 예언자
1973년 내가 고려대학에 입학했을 때 김상협 총장은 학생들의 우상이었다. 반정부데모가 심하고 경찰 최류탄과 화염병이 난무한 전쟁 같은 현장에서도 김상협 총장이 나타나면 모두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단한 카리스마였던 것 같다.
나는 김상협 총장의 평전을 썼다. 그는 겸손한 거인이었다.
스물여섯 살 나이로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학교수였던 그는 좌우 대립이 심하던 해방 직후 고려대학에서 이런 강의를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의 전 구성원이 천사라는 환상 속에서 경쟁이 없는 세상을 주장합니다. 집단이 곧 전체인 공산주의 동질사회는 만장일치의 단일의사만 존재합니다. 그런 사회가 되면 어떨까요? 일하는 사람은 없고 철학자만 남을 겁니다. 자본주의의 원죄는 경쟁이 아니라 독점에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경쟁의 원죄론은 무죄선고를 받아야 합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자였다. 그러나 치우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강의 내용은 이렇게 계속된다.
“우리는 좌우익 진보와 보수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수를 하라고 강요한다면 있지도 않은 재산을 지키라는 말과 같습니다. 모순입니다. 우리는 중산층의 자유시민을 늘려야 합니다. 민주주의란 결국 소유권 있는 중산층의 산물입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 망하리라고 예언한 서구제국은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프롤레타리아를 끌어올려 부르주아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그는 6.25전쟁도 정확히 예측했다. 임표의 팔로군에 있던 10만의 조선군이 북한으로 귀환한다면 그 예봉이 남쪽으로 돌려질 것이라고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강단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가 동방의 유령으로 나타난 것은 아시아의 절대빈곤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동경은 빈곤추방 염원의 극단적인 표현일 것입니다. 공산주의로부터 아시아를 구출하는 길은 무엇인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후진국의 빈곤이 추방될 수 있도록 경제발전을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조방식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미국은 원조대상국인 한국을 자국의 잉여물자 처분장소로밖에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감사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상은 중심이 서 있었다. 자유당정권 시절 그는 장준하 선생과 함께 <사상계>란 잡지를 통해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를 외쳤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얼어붙은 반공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자유주의자인 그는 ‘모택동 사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 땅에 온 예언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통찰과 예언의 집적체는 그가 죽기 2년 전인 1993년 5월 20일 아침 여의도 63빌딩 55층 티파니룸에서 여야 정치인들에게 한 다음의 강연 내용이라고 본다.
“김구 선생은 북과 교섭해서 한민족을 하나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여운형 선생도 한민족이 절대로 갈라져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두 분은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다만 2차대전 후 미소의 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쪽인가 저쪽인가 미소의 강대국 중 어디에 줄을 설 것인가, 아니면 중립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시대적 현실보다 이상에 더 치중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서독의 아데나워 총리는 중립이 아닌 미국 자본주의 편에 가담하고 시장경제를 선택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냈습니다. 일본의 요시다 총리 역시 친미 자본주의 노선을 택해서 일본을 경제강국으로 재건했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미래를 어떻게 봤을까요? 중립은 환상이라고 하면서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주도의 자유진영과 손을 잡았습니다. 반면 동구권 국가들은 소련의 사회주의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헝가리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지도자들은 한국이 2차대전 후 줄서기를 제대로 잘했다면서 이승만 박사의 선견지명을 칭찬하는 걸 들었습니다. 우리가 잘못 선택했더라면 동구권처럼 허송 세월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김상협 교수의 강연록을 보면서 나는 성경 속 바울처럼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승만이 정권을 잡기 위해 친일파와 손을 잡고 분단국가를 만들었다고 했다. 또 미제국주의를 추종하는 친미파라고 했다.
김상협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공과 과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과오가 많았습니다. 5.16군사쿠데타는 좀 심했습니다. 박정희는 순수하고 심약한 정치 지도자 장면 총리를 하룻밤 사이에 축출한 무법자입니다. 군에 복귀한다는 연막을 치고 공화당을 사전 조직하고 야당탄압을 하면서 사실상 일당 정치를 한 기만정략가입니다. 유신으로 의회정치를 없앤 것도 심했습니다. 장기집권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영남떼부자’ ‘호남떼거지’란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이 반목하게 한 민족분열주의자입니다. 마지막은 총탄에 의해 술자리에서 살해당한 것도 국제적인 망신인 독재자의 말로였습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이런 자기 잘못을 알고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열심히 경제대통령 노릇을 했습니다. 중국의 최고실력자인 등소평도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그대로 따르고 일본 언론도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메이지유신 스타일이라고 하면서 극찬하고 있습니다. 박대통령 시절 고통도 받고 희생도 치렀지만 그래도 우리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빈곤의 추방과 국가개발의 신기원을 이룬 근대화의 아버지가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념대립이 심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은 우리가 통일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성역을 가지고 있어서 피차 이를 자진 포기할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다고 한반도가 중립화 통일을 할 수 있을까요? 중립이란 국제적인 중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위의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통일의 개념을 일대 전환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념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세계 모든 국가들이 경쟁을 벌이면서 복지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국제적 환경 속에서 우리가 가야할 광장이 바로 자유복지사회라는 광장입니다. 남북한도 이 새로운 경쟁대열에 합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통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북한보다 우리가 앞서 그 광장에 도착해 기다리는 것이 통일의 첩경이지, 무슨 교묘한 술책이나 요행에 의해 통일이 성취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의문이 제시될 것입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상극적인 체제인데 인류 공통의 복지사회라는 광장에서 만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미래 체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체제가 단순히 혼합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해체되어 각자 새로운 모습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체제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양 체제가 새로운 창조의 방향으로 발산되는 상태를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는 시대의 예언자 같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그의 통찰을 배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에 대한 평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