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택시운전은 도 닦기 좋은 ‘수행법’

내게 하소연하는 글이 하나 왔다. 택시기사를 하면서 취객들에게 당하는 고통을 얘기하고 있었다. 주정을 하면서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인내하다가 112에 신고한다고 했다. 경찰마저도 직접적인 폭행이 없으면 그들에게 사정 하며 가시라고 한다는 것이다. 시간과 금전적 손해와 정신적 허탈감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그는 택시기사를 보호하는 법률은 누가 만드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속칭 그런 ‘진상’들이 세상에 널려있는 것 같다. 세무사를 하는 딸의 친구가 고객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 같다. 앞으로 개인 고객의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주민센터나 공기업의 창구 어디서나 그 앞에 팻말이 달려있다. 업무담당 공무원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니 막말이나 폭행을 하지 말라고. 일본의 백화점에서는 진상 손님만 상대하는 알바생을 고용하는 걸 봤다. 마네킹을 세워놓을 수는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를 고용해 그냥 그 앞에 서있게 하는 방법이다. 욕과 행패만 일방적으로 당해주는 감정노동자다.

몇년 전 택시에 탔던 진상의 법률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술이 취해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시비를 걸고 괴롭혔다고 했다. 갑자기 길거리에 택시를 멈춘 기사가 차 뒤로 다가와 문을 열고 그를 끌어내면서 주먹을 날리더라는 것이다. 눈에서 불이 번쩍하면서 길바닥에 쓰러졌다고 했다. 기사의 주먹 한방에 광대뼈가 부서져 뼈를 철사로 묶는 안면수술을 했다고 했다. 택시기사가 찾아와 4000만원을 주겠으니 합의하자고 하더라는 것이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택시기사가 입은 손해가 더 클 것 같았다. 피해자가 된 진상손님은 자기가 한 짓을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래 전 또 다른 택시기사로부터 들은 이런 말이 떠올랐다.

“술취한 손님을 모시고 가는데 자기 아파트 입구를 제대로 찾지 못한다고 하면서 옆에서 따귀를 때리더라구요. 자기가 검사래요. 검사면 저를 그렇게 때려도 되는 건가요?”

그의 가슴에 맺힌 한이 깊은 것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우리같이 정직한 직업이 어디 있습니까? 가는 거리만큼 나오는 미터기의 요금을 받고 일을 합니다. 그런데 왜 돈을 안내고 도망을 하면서도 욕하고 조롱하고 때리냐구요. 이놈의 세상 콱 뒤엎어졌으면 좋겠어요.”

택시기사를 괴롭히는 그런 진상은 이 사회의 해충이다.

그보다 더한 독충 같은 인간도 봤다. 유명한 배우나 탤런트를 댓글로 괴롭히는 여성을 봤다. 상대방이 반응을 하면 그때부터는 잠도 자지 않고 저주와 악담의 댓글을 써서 보냈다. 그보다 한 단계 높은 독사를 보기도 했다.

한 여성이 미남 인기탤런트를 상대로 허위의 고소를 했다. 세상은 유명인이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보기 좋아하는 것 같다. 연일 그 뉴스가 언론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을 채웠다. 질 나쁜 독사 같은 존재는 검사 앞에서도, 판사 앞에서도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검사나 판사는 세상이 기대하듯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공부만 하다보니까 어떤 면에서는 보통사람보다도 못한 경험과 무딘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독사에게 물린 그 탤런트가 오랜 시간 고통에 시달리는 걸 봤다.

변호사인 나 자신도 독사굴 같은 범죄의 세계에 손을 넣는 직업이라 그런지 여러 번 물렸었다.

겉으로는 인간의 탈을 쓰고 아무 데나 달라붙어 괴롭히는 날파리 같은 영혼도 있고 모기같이 피를 빠는 영혼도 있다. 독거미의 영혼도 있고 독사의 영혼을 가진 살덩어리들도 많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독을 뿜으면서 자신이 남을 해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방충망 내지 해독제가 되어야 할 현실의 법은 의외로 효력이 없다는 것이 40년 가까이 현장에서 변호사를 해 온 나의 경험이다. 형사나 검사 그리고 판사는 해충이나 독충을 가려낼 시력이 미약했다. 더러는 그들 자신이 물릴까봐 겁을 내서 그런지 사명감이 부족한 것 같기도 했다.

내 경우 억울하게 피고인이 됐을 때 법의 보호 밖에 있는 투명인간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슬픈 일이지만 그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법이 왜 이래요? 하고 나는 항의할 상대방이 없었다.

삶은 고통이다. 해충이나 독충 아니면 독사 같은 영혼을 가진 살덩어리들과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 먹고 살려면 그런 것들이 우글거리는 진흙 구덩이에서 뒹구는 법도 배워야 했다. 도(道)란 산속에서만 닦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도심의 택시 안에서 진상 손님에게 시달려 보는 것도 수행의 한 방법이 아닐까. 써머셋 모엄이 쓴 ‘면도날’에서 허버드를 나온 주인공 청년은 택시운전이 도를 닦는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글을 보낸 분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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