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동인과 백년 전 감옥 풍경

변호사를 40년 가까이 하면서 감옥을 참 많이 드나들었다. 그곳에 사는 죄수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세상이 바뀌어도 감옥 안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도심에 번들거리는 유리창의 최신형 빌딩이 늘어나도 교도관들은 낡은 콘크리트 건물에서 무쇠난로에 연탄을 갈아 넣고 있었다. 동굴같이 어둠침침한 감옥의 통로는 곳곳이 녹슨 철창으로 막혀 있었고,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메마른 쇳소리가 허공에 퍼졌다.

냉기가 감옥의 벽에서 스며나오는 겨울 같은 봄. 누런 홋겹 죄수복을 입고 얼굴이 백짓장 같은 대도를 봤었다. 떨고 있는 그를 보면서 연민과 동정이 들었다. 그는 그때 이미 30년 가까이 그런 징역살이를 하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 열을 받은 감방이 헉헉거리며 열기를 되뿜어 내던 여름날 감옥에서 탈주범 신창원을 만났다. 손에는 수갑을 차고 온몸이 굵은 쇠사슬에 칭칭 묶여 있었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그들에게 빛이 들기 시작한 것 같다.

시내에 있던 교도소들이 외곽지역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건물과 장비가 들어서고 그 내부도 바뀌어 갔다. 감방마다 싱크대 한 토막을 놓아주는 바람에 똥통에서 식판을 닦지 않아도 됐다. 죄수들은 그 싱크대를 ‘추미애 싱크대’라고 하며 감사해 했다. 추미애씨가 법무장관 때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감옥 안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도 보는 것 같다. 감옥에 있던 유명한 조폭 두목은 내게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그 안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볼 수도 있고 독서나 집필도 자유인 것 같았다.

내가 오늘 감옥 얘기를 꺼낸 것은 일제시대를 살던 소설가 김동인이 감옥을 체험하고 쓴 글을 읽었던 기억이 뇌리에 강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핵심 내용과 시대의 질감을 되살려 남겨두고 싶다.

김동인

1919년 3월 열아홉살 김동인은 고향인 평양 집에 있었다. 연극을 하는 친척동생이 그를 찾아와 조선독립을 주장하는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걸 프린트해서 평양시민에게 뿌릴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동생에게 격문을 만들어 주었다. 그 얼마 후 김동인은 구속됐다. 그가 들어간 감방은 네 평 정도였다. 그 안에 스무 명 가량이 들어차 있었다.

만세시위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그 좁은 방에 41명이 들어차게 됐다. 서로 붙어서서 숨 쉬기도 힘들었다. 밤이 돼도 누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3교대로 나뉘어 번갈아 잠을 자고 남은 사람은 서서 기다렸다. 서서 자다가 기절하듯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감방 바닥은 몇 겹으로 포개진 인간들의 몸뚱이가 널부러져 있었다. 종기 투성이인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고름 냄새와 똥 냄새가 바닥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재판에 불려가는 날이면 그래도 견딜 만했다. 약간의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지옥 속에서도 사람들은 밥알 몇 개를 남겨 그걸 짓이겨서 개도 만들도 돼지도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손수건 양쪽을 젓가락으로 말아 만든 부채로 바람을 만들기도 했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밖의 세상 소식을 궁금해 했다. 옆 감방에서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숫자로 표시하는 암호였다.

‘좋.은.소.식.있.소.독.립.이.되.었.다.오’
‘어.디.서.들.었.소?’
‘오.늘.아.침.밥.속.의.편.지.에.서’

터질 것 같은 감옥에 있는 그들이 갈구하는 나라가 어떤 것인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김동인은 그렇게 감옥에서 석달을 보내고 한여름이 다가오는 1919년 6월26일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왔다. 그는 감옥에서 겪은 체험을 글로 썼다. 그는 극한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민족자결이나 독립보다는 맑은 공기와 냉수 한 모금이 더 소망이더라고 했다.

후세의 역사가들 중에는 그 시절 사람들이 변절했다면서 의지 박약자로 매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역사가들이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이라는 완장을 차고 죽은 영혼들에게 ‘친일파’라는 주홍글씨를 붙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혹독한 시대에도 해외에 나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의지를 꺽지 않은 초인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들이 소설가 김동인이 묘사한 그 시대의 지옥 같은 감옥에 있었더라면 그래도 강철 같은 의지로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까.

시대의 폭력 앞에서 한없이 약한 게 인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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