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광우병 ‘촛불’과 3.1운동 ‘횃불’
광우병사태 때였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방송을 보고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괴담이 돌았다. 시청앞 광장에는 미친 소의 상이 세워져 있고 여러 개의 막사 안에는 눈에 독기를 품은 사람들이 들끓었다. 백만명만 모이면 정권을 엎을 수가 있다며 그들은 사람들이 더 몰려들기를 기다렸다.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으로 도망 가 겁을 먹은 채 붉은 촛불의 광장을 내려다 보았다. 나는 그때 거짓방송으로 국민을 선동한 사람들을 고소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때였다. 붉은 촛불의 물결이 거리에 넘쳐 흐르고 있었다. 온갖 유언비어가 돌았다. 내가 시위대를 따라 조계사 앞을 지날 때였다. 뒤에서 스님 같아 보이는 사람이 혼잣말을 내뱉는 소리를 들었다.
“박근혜가 이 땅에서는 살기 힘들겠군.”
흥분한 촛불 물결이 청와대까지 진군하고 있었다. 권력에 저항하는 군중의 힘은 역사를 바꾸어 왔다.
3.1운동은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횃불의 행진이었던 것 같다. 10년 동안의 차별이 사람들 마음을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대의 자료 중에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알려주는 한 장면을 보았다. 그걸 압축해서 소개해 본다.
일본에서 가난하게 살던 다나카라는 남자가 한일합방 무렵 조선으로 건너와 정착하고 작은 잡화점을 차렸다. 그는 한푼두푼 모아 논도 사고 밭도 샀다. 그는 지주가 됐다. 10년의 세월 고생하고 살만하니까 난리가 났다. 조선사람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시위군중과 일본군경이 충돌해 사상자를 냈다. 안성 읍내에서는 조선인 3천명이 모여 군청과 면사무소를 습격해 파괴했다. 밤이 돼도 그가 사는 인근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조선이 독립을 하면 그는 어떻게 될지 앞이 캄캄했다. 그의 소유가 된 땅과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일본으로 쫓겨갈 것 같았다. 그는 일본인이지만 막상 일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땅 한평도, 집도, 친인척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땅을 빌려준 조선인 소작인을 찾아갔다. 소작인의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조선이 장차 어떻게 되는 것이오? 독립을 하는 것이오?”
그가 초조한 마음으로 물었다.
“벌써 독립이 됐다고 하던데요.”
소작인의 무뚝뚝한 대답이었다.
“나 좀 봐주쇼. 나는 아무 죄가 없으니 내 것을 빼앗지 마시오. 내 땅만은 제발 내가 가지고 있게 해주시오. 나를 그냥 놔두면 소작료를 덜 받으리다.”
다나카는 마치 소작인이 혁명가이기라도 하듯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사정했다. 소작인은 도도하던 일본인이 이렇게 초라한 꼴로 빌붙는 모습이 기이하다고 느꼈다.
시위는 확산되고 있었다. 시위대가 헌병주재소를 습격할 기미를 보이고 군중을 향한 발포가 시작됐다. 일본 경찰은 조선에 사는 일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학교 강당에 집결하라는 대피 명령을 내렸다.
다나카 가족은 보따리를 꾸려 피난길에 나섰다. 일곱 살짜리 딸 마츠코는 걷게 하고 세 살짜리 아들 신타로는 자신이 업고 갓난아기 신지로는 아내가 업었다. 폭도인 조선인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큰 길로 가지 않고 논둑 밭둑 좁은 길을 택해 집결소로 향했다. 겨우 마을을 벗어날 때였다. 다나카 가족은 지게를 지고 논길을 가던 조선 농부와 마주치자 기겁을 했다.
“살려주십쇼”
다나카가 사색이 되어 빌었다. 조선인 농부가 손에 든 지게 작대기로 자신의 머리통을 내리칠 것만 같았다. 조선인 농부는 묘한 눈길로 다나카 가족을 보다가 획 돌아서서 자기 갈 길을 갔다.
집결지인 소학교 강당은 일본인들로 꽉 차 있었다. 젊은 일본인들은 조를 짜서 경비를 돌고 늙은 사람들은 밤에 불침번을 섰다. 일본인들의 관심사는 그들의 재산이 어떻게 되느냐였다. 밤이 되자 산기슭에서 횃불이 피어올랐다. 잠시 후 횃불은 점점 더 많아지더니 온 산이 횃불로 불타 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대한독립 만세”
천둥같이 들리는 그 소리는 거대한 공포였다.
세월이 흐르고 다나카는 노인이 되고 아이들은 자라나 성인이 됐다. 조선에 뿌리박은 다나카의 아이들에게 조선은 고향이었다. 조선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다니고 어른이 됐다. 어느 날 조선을 점령한 미군사령부는 전 재산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가라는 추방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피눈물 흘리면서 바다를 건너는 배를 탔다. 패전 일본은 그들을 돌볼 여력이 전혀 없는 때였다. 그들 역시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불쌍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