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영어 귀신’ 언제나 벗어날까?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녀가 보고 싶었다. 손녀는 매일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 같다. 독서실 가까이 있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손녀에게 잠시 와서 고기를 먹고 가라고 했다. 잠시 시간을 내서 나온 손녀의 손에는 영어책이 들려있었다. 그 내용을 잠시 봤다. 어려운 영어논설을 담은 지문들이었다. 그렇게 영어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대학에 갈 수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영어 지문에 나오는 문장들을 보고 나는 막막했었다. 영어 귀신은 대학 때도 그 이후에도 따라붙어 다녔다.

대학 시절 독서실에서 만난 노장 고시생이 있었다. 10년을 고시 준비했는데도 영어 때문에 번번이 1차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피를 토하듯 울면서 고시를 포기했다. 나와 친한 법대 동기가 있다. 영어 때문에 7번을 고시의 1차에서 떨어졌더니 진짜 하늘이 노랗게 보이더라고 했다. 남들이 <타임>지를 성경같이 끼고 다닐 때 나는 영어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기업에 입사시험을 쳤더라면 나는 분명히 떨어졌을 것이다.

영어에는 목을 매달면서 국어 문장은 등한시하는 이유는 뭘까. 한글로 자기소개서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감옥에 간 한 친구를 위해 일류 로스쿨 원장에게 탄원서를 써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보내온 탄원서에는 어떤 탄원도 들어있지 않았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문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유명가수를 변호한 일이 있었다. 동료가수들에게 진정서를 부탁했었다. 노래로는 국민들의 마음을 흠뻑 젖게 하는 가수들의 문장력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빈약했다.

<말모이>라는 영화를 봤다. 일제시대 목숨을 걸고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내는 투쟁을 그려내는 내용이었다. 정말 액면 그대로 진실이었을까.

나는 1934년 9월호 잡지 <신동아>를 본 적이 있다. 한민족의 신문인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하는 한글로 된 시사잡지였다. 총독부는 한글 사용을 허락하고 학교에서도 조선어 시간이 있었다. 잡지를 뒤적이다가 ‘최현배’라는 낯익은 이름이 기고한 글을 봤다. 그는 한글학자였다. 대강의 내용은 이랬다.

한글 문장을 잘 쓰는 일본인들에게는 동경의 정부에서 장려금까지 준다. 총독부에서 ‘한글 철자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학교에 조선어를 습득하는 시간을 두었는데도 조선인들이 한글을 경시하고 있다.(중략) 지금도 강남의 화려한 식당가를 지나가면 영어와 일본어로 된 간판이 즐비하다. 한글 간판은 촌스럽게 느껴지는지 거의 없다. 말과 글에는 우리의 정신이 들어있다.(하략) 사진은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

‘한글 교과서가 편찬되어 전 조선의 아이들이 한글을 배운다. 한글로 된 신문잡지가 전 조선의 집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나를 포함해 한글을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게 어렵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어렵다고 하니까 영어와 한번 비교해 보기로 하자. 중학교 5년 동안 영어수업은 매주 10시간이다. 여기에 그 예습 복습에 투입하는 시간을 따진다면 실로 막대하다. 그러면서도 막상 중학을 졸업해도 회화 한마디 하지 못하고 신문 한 장 읽지 못한다. 전문학교에 진학해 3년 동안 열심히 영어를 더 공부해도 영어편지 한 장 못쓰고 회화는 꿈도 못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영어가 어렵다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옛날부터 대여섯 살이 되면 천자문을 시작해서 백발이 될 때까지 한문을 전공했지만 명문장이 되거나 큰 시인이 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한문이 어렵다고 불평한 사람은 거의 없다. 왜 그랬을까. 어려운 한문 습득에 부귀와 영화가 달렸기 때문이다. 평생을 한문 학습에 허비한 선조들의 어리석음을 원망하는 오늘의 조선청년들이 저렇게 어려운 영어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뭘까.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옛날 사람과 마찬가지 심리다. 영어와 일본어를 해야 상급학교에 갈 수 있고 취직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글이 어렵다고 말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한문이나 영어나 일본어에서 기대하는 것 같은 좋은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있다. 바다를 건너온 일본인들은 열심히 한글 공부를 한다. 한글 문장을 잘 쓰는 일본인들에게는 동경의 정부에서 장려금까지 준다. 총독부에서 ‘한글 철자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학교에 조선어를 습득하는 시간을 두었는데도 조선인들이 한글을 경시하고 있다. 한글운동의 창시자 주시경 선생을 공격하고 한글맞춤법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학문적 명성을 높이려는 조선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조선말은 품위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태도이다. 왜 한글을 어렵다고 할까? 돈도 지위도 이름도 생기지 않으니까 배워서 뭐하냐는 마음이 아닐까.’

90년 전 최현배 선생의 질타는 지금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강남의 화려한 식당가를 지나가면 영어와 일본어로 된 간판이 즐비하다. 한글 간판은 촌스럽게 느껴지는지 거의 없다. 말과 글에는 우리의 정신이 들어있다. 정말 우리 말과 글을 일본에 의해 강제로 빼앗겼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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