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오늘부터 한민족은 일본제국의 신민이다”

한동안 국립도서관에 가서 구한말과 일제시대 관련 자료들을 읽었다. 기록 속에서 여러사람들이 소리치고 들끓고 있는 것 같이 느낄 때가 있었다. 나는 자료들을 타임머신으로 그 시대로 돌아가 현대까지 그 부를 유지한 고창 갑부의 집안과 그 주변을 돌아다 보았다. 구한말 금산군수의 아들로 일본중학으로 유학을 간 홍명희는 아버지를 따라 고창 갑부 김경중의 집에 들렸을 때 그 집 아들 형제인 김성수와 김연수에게 그가 본 발달 된 문명을 얘기해 주며 눈을 뜨게 한다.

후일 홍명희는 북한의 부수상이 되고 김성수는 남한의 부통령이 된다. 그리고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는 한국인 최초의 재벌이 된다. 소년 김성수는 나중에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송진우 등 주위 친구들을 또 일깨우기도 한다. 자료를 보고 나라가 기울어질 무렵의 단편적인 시대상황과 똑똑한 소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1908년이었다. 영학숙에서 공부하는 소년 송진우가 친구인 김성수가 사는 집에 놀러와 열변을 토해냈다.

“나라가 망해 가는 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까? 지금 이완용 내각이 들어섰고 군대도 해산됐어.”

송진우는 특이한 소년이었다. 황성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를 열심히 읽고 사설을 오려 가지고 다녔다. 을사조약을 반대한 장지연의 ‘시일야 방송대곡’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가 세상에 대해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한성으로 올라가 교원양성소에 다니려고 해”
“그러지 말고 우리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가자.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편이 낫지”

김성수가 제의했다. 그는 얼마 전 일본의 중학생이 된 홍명희에게서 들은 얘기를 자세히 전했다.

“그래 한성으로 갈 바에야 차라리 일본으로 가는 게 낫다.같이 공부하는 백관수 한테도 연락을 해서 일본으로 가자고 하자”

송진우가 생각을 바꾸면서 말했다. 백관수도 영학숙에서 같이 공부한 사이였다. 그 얼마 후인 1908년 10월 김성수는 송진우와 함께 일본행 시라가와마루호에 올랐다. 이어서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도 유학을 가게 된다.

해가 바뀌고 1909년 10월이다. 동경의 신문들은 일제히 내각 총리대신인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의 안중근에게 암살당했다고 보도했다. 전 일본이 흥분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정치가였다. 일본의 언론들은 야만적인 한국을 아예 병탄해 버려야 한다는 논조를 쏟아냈다. 동경의 조선인들이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그 1년 후인 1910년 8월 22일 조선왕궁에서 어전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총리 이완용이 대신들 앞에서 고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 대신들이 조선과 일본의 병합을 찬성하고 있나이다”
“어떤 내용의 합병인가?”

고종이 물었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통치권을 일본 천황에게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넘기며 대신 일본은 대한제국의 황족과 그 후예 그리고 병합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후하게 대접하고 일본에 협력하는 조선인들을 관리로 등용하겠다는 조건입니다. 병합 후 이왕직이라는 기구가 설치되어 황실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합병공로자에게는 작위와 은급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그로부터 두 달도 안 된 1910년 12월1일이었다.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남산 중턱의 새로 닦인 길 위로 햇빛을 튕겨내면서 호화로운 마차 한대가 오르고 있었다. 길의 주변에는 일정 거리마다 일본군들이 서서 경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윽고 마차가 건물 앞에 서자 안에서 초대 총독이 된 데라우찌 마사다케가 내렸다. 건물에 붙어있던 통감부라는 간판이 총독부라고 바뀌어 있었다. 데라우찌 총독은 도열해 있는 일본인 관리들 앞의 단상에 올라섰다.

“감격의 순간이다. 오늘부터 천황폐하의 명령을 받들어 조선민족을 돌보아주게 됐다. 오늘부터 한민족은 명실상부한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

그 시각 열 여섯살 나의 할아버지는 그 의미를 알았을까. 민초였던 나의 할아버지는 왕과 대신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 무렵 나의 할아버지는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로 갔다고 내게 말했었다. 문명에 눈을 뜬 조선의 똑똑한 소년들의 발자취를 나는 계속 추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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