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⑤] “아, 방송시간이 다 됐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30년 전 ‘대도’라는 절도범의 재판을 할 때였다. 어느 날 아침 ‘뛰어라 새벽’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라고 하면서 전화가 왔다. “시청자들이 궁금해 해서 한 말씀 여쭤보려고 하는데 허락해 주시죠. 교도소 내 인권 실태나 변호를 맡게 된 경위에 대해 한 3분 정도 간단히 물으려고 합니다.”
권력이 언론을 통제하고 내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던 때라 나는 말하겠다고 했다. 작가는 내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전화기 저쪽에서 진행자의 수다와 광고방송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잠시 후였다.
“엄 변호사시죠?”
여성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습니다.”
“물방울 다이어 도둑의 변호를 맡으셨는데 그가 훔친 보석들의 양이 도대체 얼마나 됩니까?”
역시 세상의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나는 화가 났다.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호응하기 싫었다.
“포대 한 자루 정도 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맞습니까?”
남성 사회자가 끼어들면서 물었다.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시중에는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한번 떠보려고 스타범죄자를 맡았다고 하는데 자신의 입장을 한번 변호해 보시죠?”
옆에 있을 것 같은 여성 사회자의 목소리였다. 오물이라도 뒤집어 쓴 듯한 모욕감이 들었다.
“아이들은 장난으로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는 죽을 지경입니다. 절실한 인간을 왜 흥미거리로 만듭니까?”
“아, 방송시간이 다 됐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사회자는 나의 말을 황급히 잘라버렸다.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방송에서도 그 비슷하게 나를 평가하는 소리를 들었다. 별 볼 일 없는 변호사라는 말은 맞는 것 같았다. 화려한 전관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잘 버는 변호사도 아니었다. 인권이라는 말만 나오면 잘난 체하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죄수들에게 전도하는 목사가 개같은 학대를 받는 죄수가 있다는 말을 하는 바람에 그 사건을 맡았다. 두 번이나 거절하니까 그 목사는 화까지 냈다. 돈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 죄수는 자기는 석방이 안 되도 좋으니까 사람이 맞아 죽은 걸 세상에 꼭 알려달라고 했다. 목사 하고 죄수에게 엮여서 나만 몰매를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 후 조선일보 기자라고 하면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저희는 다른 데 취재원도 많습니다. 싫으시면 말 안하셔도 됩니다. 교도소 내의 인권을 문제 삼으시는 것 같은데 물증이 있습니까?”
시작부터 말투가 삐딱했다. 어조에서 그의 의도가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았다. 그 기자는 결론을 내놓고 전화를 걸어 쌍방 취재를 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 같았다.
“제가 사람을 때려죽인 몽둥이를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됐습니다. 저는 일단 확인했습니다.”
다음날 조선일보 사회면의 한쪽에 박스기사가 나왔다. 사망원인이 병사라는 법무부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내용이었다. 끝에는 공명심에 들뜬 한 변호사의 해프닝으로 결론 짓고 있었다. 검사도 내게 전화를 걸어 내가 공명심에 들뜬 것 같다고 말했다.
별 일이 다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60대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찢어진 눈에 사납게 생긴 얼굴이었다.
“할렐루야 기도원의 이 목사입니다. 저는 원래 종로 쪽에서 놀았습니다. 변호하시는 대도는 무교동과 광화문쪽이 나와바리였구요. 어렸을 때 우리는 서울역에서 같이 깡통밥을 먹었는데 제가 대도의 선배가 됩니다. 좋은 일 많이 하시는데 이왕 하시는 길에 우리 기도원 좀 도와주시죠.헌금 좀 하라는 얘깁니다.”
사정이 아니라 거의 협박조였다. 불쾌했다.
“내가 왜 돈을 드려야 하죠? 선배라면 내게 오히려 변호사 선임료를 내야 할 입장이 아닌가요? 난 못받았는데.”
“대도 때문에 유명해졌으니까 돈 좀 내슈”
“못 내겠는데”
“내가 아직 종로 판에 후배들을 데리고 있는데 당신 한번 손봐야겠어.”
별별 똥파리들이 붙기도 했다. 대도의 거지 시절 친구라고 하면서 아버지 묘 이장하는 돈을 대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정말 공명심에서 그 사건을 맡은 것일까? 그 시점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인간은 명예욕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위선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내 속에 공명심이 얼마나 있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해줘.”
“당신은 뭔가에 꽂히면 이익인가 손해인가 계산을 못하고 바로 내지르는 사람이야. 약지 못하고 둔한 사람이지. 내가 보기에 공명심은 아니야. 하나님은 당신 같은 미련둥이를 써서 일 시킨다고 하던데”
나는 속으로 ‘에이 씨’ 하고 투덜대면서 그분에게 따지고 싶은 감정이었다. 괜히 나섰다가 얻어맞고 피투성이가 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