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구한말 동경의 조선인 대학생
1907년경 일본의 와세다대학에서 모의국회가 열렸다. 상정된 안건은 조선의 황실을 일본의 황족으로 흡수하자는 안건이었다. 최린이라는 조선 유학생이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했다. 분노한 그는 조선 유학생 긴급회의를 소집해 와세다대학 학장을 찾아가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냈다.
같은 해 11월경 동경 시내의 어느 흥행장이었다. 조선 왕이 일본으로 건너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절을 하는 인형극이 공연되고 있었다. 그걸 본 최린은 2백여명의 조선 유학생들을 몰고와 그 흥행장을 때려 부수고 난동을 일으켰다. 기마 순사대가 출동해서 조선 유학생들을 연행해 갔다. 최린은 조선 유학생 사이에 영웅이 됐고 후일 3.1운동의 중심에 있게 된다.
조선의 유학생 중에는 일찌기 사회의식에 눈 뜬 인재들이 많은 것 같다.
송진우는 동경에서 개최되는 각종 연설회에 참석해 듣고 신문의 논설을 뜯어 보관하고 공부하면서 이념적 지향과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인식에 눈이 열린다. 동경 유학생 중 홍명희, 이광수, 최남선은 천재로 소문이 났다. 한일합방이 되어 나라를 빼앗기자 홍명희의 아버지 홍범식은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했다.
그걸 계기로 홍명희는 독립운동을 하겠다며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이광수도 동경에서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홍명희의 뒤를 이어 상해로 갔다. 최남선은 3.1운동 무렵 국내에서 독립선언문을 쓴다.
당시 일본 유학생 중에는 조선의 인재들이 많았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인 장덕수는 관청의 급사노릇을 하면서 열여덟살 때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스무살 때 동경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일본인 상점에서 고학을 하면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외 메이지대학의 조만식,김병로, 게이오대학의 김도연, 교토제국대학의 김우영 등 많은 인재들이 모여 있었다.
유학생 중에는 교육과 경제쪽으로 눈이 열린 김성수와 김연수 형제가 있었다. 그들의 눈에 일본의 속살과 그 일본을 배경에서 이끈 한 선각자가 보였다. 원래 일본도 양반 상놈의 차별이 심했다. 양반인 무사계급도 상급과 하급으로 나누고 신분이 세습되는 조금의 융통성도 없는 사회였다.
그런 일본에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개화사상을 가진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열여덟살에 네덜란드를 연구했고 스물네살에 영국을 공부했다. 그는 일본의 사절단의 수행원이 되어 유럽과 미국을 다녀왔다. 그는 런던 체류 중에 다른 것은 제쳐놓고 영어책을 사서 가지고 왔다. 일본이 최초로 수입한 영어서적이었다. 그는 일본 국민들에게 서양을 따라가려면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시사신보>라는 신문을 만들어 여론을 주도하고 ‘경응의숙’이라는 학교를 만들어 인재를 양성했다. 그는 조선도 문명의 진전 여부가 독립을 좌우한다고 하면서 조선의 급선무는 근대화라고 박영효나 김옥균에게 알려주었다. 그는 근대화를 부르짖으며 일본의 정신을 깨우치는 나침반이 됐다. 그는 김성수 김연수 형제의 정신적 멘토이기도 했다.
김성수 김연수 형제는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경제력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일본은 미국에 눌려 개항을 하고 재빨리 생사(生絲)나 차를 수출해서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 달러를 가지고 ‘스톤 윌’이라는 철갑함을 사들였다. 달러를 가지고 수천 정의 총도 사들였다. 일본 사람들은 무기뿐 아니라 서양에서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사들여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을 그들은 목격했다.
사회의식에 눈을 뜬 조선 유학생은 전체적으로 보면 소수였다. 대다수 유학생들은 일본의 고등문관시험을 조선의 과거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목을 매고 전념하고 있었다. 반면 의식있는 조선유학생들은 그들을 보면서 법을 만드는 의회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그걸 집행하는 부품으로만 이용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보통 사람들은 조선인을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나는 당시 한 조선유학생의 글에서 그 편린을 발견했다. 그는 교무실에 갈 때 몇 명의 선생님들이 모여 한담을 하는 걸 자주 들었다고 했다. 선생들 얘기 속에 당시 유럽은 온통 유대인의 손에 놀아나고 일본에 사건이 발생하면 그 배경에는 조센징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들이 존경하는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조선인을 그들은 다른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