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16] 도둑계의 전설

“대도와 제가 칠십억을 만들어 브라질에 있는 보석광산을 인수하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반포아파트에 아지트를 만들고 보석을 털었는데 대도가 잡히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어요. 거의 목표액을 달성한 순간 그 보석들을 도로 다 뺏겼죠. 그외에 스위스 파텍 시계도 30여개 있었는데 당시 시가가 하나에 7천만원이었죠. 모두 우리집 금고에 뒀었는데 라면상자로 두 상자를 압수당했어요. 그 유명한 물방울 다이어도 우리집에 있었는데 5.75캐럿에 전문용어로 H컬러에 내용은 VVS1이었어요. 종로 소공동 일대의 보석상은 거의 다 제가 공급하는 보석들로 장사를 했습니다.” 사진은 물방울 다이아몬드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 되면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벽 역시 비슷한 게 아닐까. 내가 변론을 맡았던 대도의 경우는 재판의 쟁점은 ‘재범의 가능성’이었다. 변호사를 하다 보니 수많은 음지의 사람들을 알게 됐다. 보석 분야에서 최고의 장물아비인 정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대도가 가져오는 장물을 처리했던 정은 이따금씩 나의 사무실을 찾아와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런 말을 털어놓았다.

“제가 공고를 졸업했는데 원래 손재주가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자수정을 연마하는 기술자였죠. 1960년대 우리나라는 다이어몬드나 루비같은 보석이 거의 없었어요. 아주 부자나 몰래 가지고 있는 정도라고 할까. 하여튼 저는 그때 명동 달러골목에서 보석가공 시설을 만들어 놓고 작업을 했어요. 훔쳐 온 보석들을 제가 가공하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으니까요.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기술은 저를 따라올 사람이 없는 것으로 자부했습니다.”

그는 범죄의 세계로 빠져든 과정은 쑥스러운지 건너뛰었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이놈 저놈 하고 함부로 거래하지 않았어요. 장물아비라는 게 언제 경찰에 달려 들어갈지 모르니까요. 실력있는 도둑 몇 하고만 상대를 했죠. 그중 대도는 맨 마지막 도둑이예요. 진짜 프로들 몇 명하고만 손잡았죠.”

“진짜 프로라뇨?” 내가 되물었다.

“황이라는 진짜 프로가 있었습니다. 황은 지방 도시에서 공장을 하는 집 아들이니까 집안 환경이 괜찮았어요. 그런데 마흔 살부터 보석털이를 시작했어요. 황은 새벽에 조깅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러 다녔어요. 트레이닝만 봐도 당장 돈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거죠. 부자들이 조깅을 마치고 돌아가는 걸 따라가서 집을 알아두죠. 황은 후에 집주인의 조깅시간에 그 집에 가서 보석과 현찰을 털었죠. 전국을 다니면서 그렇게 했죠.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황은 일본으로 활동무대를 넓혀 아예 동경의 보석점을 털었어요. 한번 원정을 갔다오면 몇억씩 벌어 오더라구요. 한 번도 경찰에 잡히지 않았어요. 인간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구요? 잡힌 현장에서 경찰에 거액의 보석이나 돈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상한 건 대부분의 도둑들은 돈을 낭비하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는 가진 돈이 오십억이 넘자 중국에 투자를 했어요. 공장도 차리고 광산도 사고 지금은 잘나가는 사업가예요.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게 건실한 사장님이 없죠. 지금은 도둑일을 완전히 그만뒀죠. 보통 남의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으면 끊지 못하는데 황은 어느 날 아침 단호하게 그만두더라구요. 의지가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나는 마치 소설 속 주인공 얘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얼핏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의 상식과 관념과는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그가 잠시 말을 끊고 누군가를 떠올리는 표정이더니 말을 계속했다.

“안씨라는 또 다른 베테랑이 있었어요. 우리 장물업계에서 알아주는 도둑이죠. 인물도 좋고 덩치도 크고 그 친구 정말 도꼬다이고 멋쟁이 도둑이었어요. 시경 도범계 윤 형사가 장물아비였던 제게 소개해 줬죠. 안씨는 윤 형사하고 의형제까지 맺은 사이였죠. 그러다 인천지검의 검사에게 걸려 모두 철창신세를 졌어요. 윤 형사도 옷을 벗구요. 그 이후 도둑이었던 안씨는 범죄세계와는 인연을 딱 끊고 공구상을 하는데 정말 지금 건실하게 살고 있어요. 사실은 그 안씨가 대도를 잡아서 경찰에 넘겨준 거예요. 형사들은 자기가 잡았다고 자랑하는데 안씨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형사들은 모두 맞아 죽었을 겁니다. 그 다음 인연을 맺은 게 대도입니다.”

“대도와는 어떻게 일했습니까?”

“대도와 제가 칠십억을 만들어 브라질에 있는 보석광산을 인수하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반포아파트에 아지트를 만들고 보석을 털었는데 대도가 잡히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어요. 거의 목표액을 달성한 순간 그 보석들을 도로 다 뺏겼죠. 그외에 스위스 파텍 시계도 30여개 있었는데 당시 시가가 하나에 7천만원이었죠. 모두 우리집 금고에 뒀었는데 라면상자로 두 상자를 압수당했어요. 그 유명한 물방울 다이어도 우리집에 있었는데 5.75캐럿에 전문용어로 H컬러에 내용은 VVS1이었어요. 종로 소공동 일대의 보석상은 거의 다 제가 공급하는 보석들로 장사를 했습니다.”

“예를 들면 국무총리 집에서 훔쳐온 은빗의 사연이라든가 다른 보석들 소유자의 신분은 어떻게 알죠?”

“대개는 형사들이 말해줘서 알게 됩니다. 권력가 집에 도둑이 들면 은밀히 특별수사가 시작이 되는데 형사들이 저 같은 장물아비한테 그 배경을 말해주고 물건을 돌려달라고 유도합니다. 세상에는 절대로 비밀인 권력가나 부자들의 사연이 많죠. 너무 구체적으로 알라고 하지 마세요.”

몇번을 만나 봤지만 장물아비인 정이 거짓이나 과장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를 통해 전문 도둑의 세계에서도 자신의 의지로 범죄와 단절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대도의 경우도 세상의 빛이 비추어진다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간의 영혼이란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성령이 그에게 들어오면 인간은 본질까지 변화하는 화학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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