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18] “그에게 도둑질은 쥐 같은 생존방법이었다”
30년 전 대도 사건의 항소심 선고기일을 며칠 앞둔 오후. 나는 대도와 감옥 안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감옥의 창문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천정에 매달린 형광등의 불빛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대도에게서 어린 시절 낡은 적산가옥인 우리 집에서 본 한마리의 쥐가 연상이 됐다. 쥐는 시도 때도 없이 부엌 찬장에 숨어들어와 훔쳐먹었다. 쥐는 방에도 들어왔다. 한번은 내 방에 들어온 쥐가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서 반쯤 열려있던 서랍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얼른 서랍을 닫아 쥐를 가두면서 말했다.
“이제 너를 징역에 처하겠다. 한번 혼 좀 나 봐라.”
그렇게 쥐를 이틀쯤 깜깜한 서랍 속에 감금했다. 그러다 쥐가 궁금해서 서랍을 열어 보자 쥐가 튀어 나왔다. 내가 놀라서 멍한 사이 쥐는 힘 빠진 걸음걸이로 구석에 있는 장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너는 도주죄를 저질렀으니까 이제 사형에 처하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아버지 방에서 공기총을 가져왔다. 나는 좁쌀보다 조금 큰 납탄을 장전하고 엎드려 장롱 밑을 보았다. 힘이 빠진 쥐가 도망을 하지 못하고 두 발로 서서 앞 발로 뭔가를 쥐고 급하게 먹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장 밑에 버려진 곶감씨였다. 쥐의 작고 까만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 쥐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했다. 당시 쥐가 너무 들끓어서 학교에서는 쥐꼬리를 몇 개씩 가져오라는 숙제를 낼 때였다. 잘 때 천정에서 쥐의 부대들이 이동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쥐는 공공의 적이었다. 덫에 걸린 쥐에게 석유를 뿌려 골목에서 화형식을 처하는 걸 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곶감씨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쥐를 보고 마음이 약해졌다. 어떤 쥐도 도둑질을 한다. 쥐가 그게 나쁘다는 걸 알까? 동네 개들은 쥐를 보면 짖었다. 본능적으로 적대시하고 욕을 하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의 ‘동물의 왕국’에서 보면 사자는 불쌍한 사슴을 물어 죽였다. 참 인정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나를 보는 쥐에게 이렇게 말했다.
“죄는 밉지만 너를 용서한다. 살아라”
그때 작은 쥐의 까만 눈이 평생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대도의 어린 시절이 그 쥐와 비슷한 것 같았다.
열살 무렵 그는 서울역 부근의 꼬마거지였다. 깡통을 들고 밥과 김치를 구걸해서 불기가 남은 연탄불에 데워먹고 살았다고 했다. 좁은 골목길 구석 쓰레기통 옆에 버려진 가마니가 그의 집이었다. 어느 겨울 아침 청소부가 쓰레기가 들어있는 줄 알고 가마니를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꼬마가 오줌을 홍건히 싼 채 그 속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그 꼬마 거지는 구걸이 안되면 도둑질을 했다. 남의 집 댓돌 위에 있는 구두를 가져다 꿀꿀이죽 한 그릇과 바꾸었다. 부엌 찬장 속에 있는 은수저 하나를 가져가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었다. 방에 들어가 라디오를 훔치면 며칠은 끄덕 없었다. 그에게 도둑질은 쥐 같은 생존방법이었다.
그는 세월이 흘러도 쥐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를 쥐에 비유한다면 그를 혹독하게 비난만 하는 세상 사람들은 짖어대는 개같았다면 실례일까. 그를 정죄하는 검사나 판사는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사자 같기도 했다.
선고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보는 감옥안에서 그에게 물었다.
“믿음이 있습니까?”
쥐와 인간의 차이 중 하나는 신앙이 아닐까. 하나는 본능대로 움직이고 인간은 신을 믿는다.
“청송에서 교도관으로 근무하시던 박효진 장로가 저에게 전도하려고 무척 노력했죠. 그때마다 저는 그 분을 조롱했죠. 하나님이 있으면 저 같은 놈이 생기게 했겠어요? 그리고 설사 하나님이 있다 해도 저 같은 놈에게 맡긴 역할은 평생 도둑질을 하다가 비참하게 감옥에서 죽게 하는 거겠죠. 세상 사람들에게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표본으로요. 나의 재판이 당연히 기각될 거라고 생각하고 청송교도소에서는 독방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답니다. 법정에서 인권하면서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는데 내려오면 보자 이거죠. 앞으로 남은 게 10년인데 저는 마음속으로 재판장에게 ‘마지막 하루까지 다 살아줄께 임마’라고 하고 있어요.”
평생 찬 바람 부는 벌판에서 살아온 그는 마음이 두꺼운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 같았다. 도끼로 쳐도 그 얼음은 부서질 것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