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26] “나는 세상을 속인 사기범이 돼가고 있었다”
갑자기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얼마 전에 간을 이식받았다. 아마도 죽음의 강을 건너는 임종 연습을 한 것 같았다고 할까.
“나 수술하고 나니까 너한테 선물을 하고 싶어졌어. 언제 서울 올 거야?”
그의 마음이 변한 것 같다. 나를 그를 스쿠리지 영감이라고 놀렸었다. 그는 강남에 빌딩들과 거액의 주식을 가진 부자다. 그런데도 자신을 위해서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짝퉁 운동화를 신고 망사로 된 등산조끼를 입고 다녔다. 그의 검소함을 반어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혜화동에 있는 그의 집은 정원에 수목이 우거진 성 같았다.
오렌지족으로 편하게 인생을 즐겨도 되는데 그는 대학시절 여름방학 남산타워 내벽 시설 현장에서 철근을 나르는 인부 일을 했다. 그는 경영철학이 다른 아버지 밑에 있기보다는 혼자 성공해 보겠다며 사업을 시작했다. 녹슨 철 책상과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낡은 철제 캐비넷이 그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비오는 날도 우산을 쓰고 고객들을 찾아다니며 세일즈를 했다. 종자돈을 만들 때까지는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 그는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자반열에 들어섰다. 나는 이따금씩 그와 함께 작은 식당에서 조촐하게 밥을 먹으며 우정을 유지해 왔다. 내가 그 친구 얘기를 꺼내는 건 거치 출신인 대도와 출생부터 시작해서 거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도와 인연을 끊도록 만든 것도 그였기 때문이다.
대도와 내가 같은 집에서 있던 그때로 시간을 되돌린다.
대도는 크루즈선을 타고 화려하게 세상 바다를 항해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대도는 광화문에 선교회 사무실을 차렸다. 대도의 간증을 녹음한 테이프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대도는 직접 종교단체를 운영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를 후원하는 화장품회사 사장 부인이 사무실을 차려줬다고 했다. 대도는 신문기자들을 불러 앞으로의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어느새 우상이 됐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회장님이라고 하면서 떠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그의 영역이 넓어졌다. 그는 호주로 간증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형식적이지만 존중하는 태도를 취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찾아와서 도와 달라면서 괴롭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내가 먹여 살려야 할 사람도 많아졌구요. 이럴 바에야 차라리 감옥 안이 훨씬 편하겠어요. 그래도 감옥은 말이죠 귀찮게 구는 놈이 없죠. 때가 되면 밥을 주죠. 그게 훨씬 좋았다니까요.”
차라리 감옥 안이 편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와 함께 쟁취한 자유의 색깔이 이미 바랜 느낌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돈이었다.
어느 날 나의 부자 친구와 식당에서 만날 때 우연히 대도가 합석했다. 내가 친구에게 대도를 소개했다. 간단히 서로 인사를 나누고 10여분쯤 지났을 때였다. 대도가 친구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몇 살이슈?”
“마흔 다섯살입니다.”
“그러면 나보다 한 참 어리네”
말투가 슬며시 내려갔다. 대도의 버릇이었다.
“그러네요”
친구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 아예 내 동생 해라”
“네?”
친구가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걸 대도가 어릴 적부터 익숙하던 왕초의 태도로 이해했다. 친구도 그런 대도의 태도를 이해하고 그냥 받아들여 주었다.
그 사흘 후였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데 부자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대도에 대해 말을 좀 해주려구.”
“무슨 말?”
“그날 저녁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대도가 이 소리 저 소리 하는 걸 들으면서 나이를 먹었어도 그냥 순진해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동생 삼자고 하는구나 하고 좋게 생각했어. 네가 화장실 간 사이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서 알려줬지. 그런데 어제 대도한테서 전화가 왔어. 자기 딴에는 나를 추켜 올리면서 최대한 호의적으로 여러 얘기를 하더라구. 그렇지만 내가 왜 모르겠니? 나한테서 돈 냄새가 나니까 의도적으로 당신 모르게 접근을 하는 거지. 엄변호사 자네는 대도한테 헌신적으로 하는지 모르지만 이미 상대방은 안 그런 것 같아. 이 기회에 정리할 수 있으면 정리해. 변호사는 맡은 사람을 석방시키면 그 이상은 더 인연을 맺을 필요가 없잖아?”
나는 친구의 말을 깊이 새겨들었다. 결별의 순간이 온 것 같았다. 며칠 후 나는 이런 작별의 말을 건넸다.
“미안합니다. 저는 돈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좋은 관계였으니까 앞으로 만나더라도 서로 부드러웠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그 한마디에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 의미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 그건 아닌데…”
그가 머쓱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가 잠시 후 가방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갔다. 그가 묵던 방으로 가 봤다. 바닥에는 내가 준 성경, 개량 한복, 그리고 탄원해준 호주 교민들의 명단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명단을 그에게 주면서 감사의 편지를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대도는 결국 쓰지 않은 것 같았다.
해가 가고 어느 날 시드니에서 기독교 잡지를 하는 사장 부부가 나를 찾아왔다. 그의 초청으로 내가 호주에 가서 대도를 예로 들면서 인권문제에 대해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유의 몸이 된 대도를 호주로 초청했었다.
“엄 변호사님이 말한 대도와 실제의 대도는 완전히 달라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잡지사 사장이 내게 항의하듯 입을 열었다. 그가 계속했다.
“한마디로 교만해요. 간증을 한 후 여자집사들과 다과를 하는 자리였죠. 그 자리에서 대도는 제 처에게 동생삼자고 농담을 하더라구요. 그런 자리가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그 부인이라는 여자 말이죠. 마치 자기가 무슨 탤런트나 유명인사나 된 듯이 행동해요. 우리가 부른 건 참회한 도둑이었는데 말이죠. 그 사람들 진짜 개과천선한 사람들 맞습니까? 믿어지지 않아요.”
나는 세상을 속인 사기범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