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30] “변호사님, 국민 앞에 사과하셔야죠?”
얼마 전 밤늦게까지 서울에서 온 후배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 한 명은 사위다. 로스쿨 첫 졸업생인 그들은 내게 변호사의 길을 묻곤 했다. 사위 친구인 김 변호사가 얘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검찰총장 일을 했던 사람이 변호사가 되어 음주운전 뺑소니를 한 가수 김호중의 옆에 비서같이 따라붙으면서 마귀수를 쓴 걸 보면 한심해요. 다른 사람이 운전한 것처럼 조작하고 블랙박스 칩을 없애고 참 지저분하고 너절한 짓을 했죠. 그냥 처벌을 받으면 별 게 아닌 걸 꼼수를 쓴 바람에 김호중이 더 큰 피해를 보는 게 아닙니까? 경찰의 수사능력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모르고 속이면 될 줄 안 것 같아요.”
그 옆에 있던 사위가 내게 물었다.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탈법이나 편법을 요구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하면 법망을 빠져나갈까만 궁리하게 된다니까요. 장인은 그런 때 어떻게 하셨어요?”
사위의 질문이 무섭다. 자식에게는 위선을 부리지 말고 정직해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어땠었나. 세상은 교활한 꾀와 불법을 요구했다. 그래야 돈이 생겼다. 나는 약은 편이 되지 못했다. 나는 사위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한테 굶어 죽을 각오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지”
그렇게 말하고는 궁금해서 물었다. “자네들은 오십억클럽에 속하는 변호사들이나 잔꾀를 부리는 높은 자리에 있던 전관 변호사들을 어떻게 봐?”
“사기꾼들이죠.”
변호사를 시작할 때 나는 자격증을 가진 도둑놈이라든가 사기뿐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싫었다. 검소하게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영화 속의 ‘빠삐용’ 같은 죄수를 몇 명 자유의 땅으로 옮겨주는 뱃사공이 됐으면 멋있을 것 같았다. 성경 속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허영 내지 공명심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과정에서 내게 왔던 것이 대도사건이다. 변호사로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건 참회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꿈은 처절하게 깨지고 세상이 던지는 돌에 피를 흘렸었다. 그때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내가 절망감을 안은 채 일본에서 돌아와 김포공항을 빠져 나올 때였다. 몇 명의 기자가 다가와 물었다. “대도가 일본에서 한 도둑질이 사실입니까? 원인이 뭡니까?”
“왜 그랬습니까?” 다른 기자가 형사같이 나를 다구쳤다.
“새콤 테스트를 해보려다가 그랬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대도가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 외 할 말이 없었다.
“참 기가 막히네. 동기도 납득할 수 없고 논리적이 못 돼죠.”
나는 대도가 되어 기자들에게 신문을 받고 있었다. 기자 중 한 명이 힐난조로 나를 향해 내뱉었다. “보수층에서 엄 변호사를 아주 나쁘게 보고 있습니다. 참회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셔야죠.”
왜 보수층이라는 용어가 나오는지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왜 대도가 되어 사과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진흙탕 속에 핀 연꽃 한 송이를 그리듯 작더라도 죄인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는 게 변호사의 업무였다. 나는 대도를 성자라고 한 적이 없다. 그들이 할렐루야 하고 착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자들에게 대답했다.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다. 신문에 기사가 나갔다.
다음 날 대도의 아내가 부글부글 끓는 모습으로 나의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일본 가는 비행기표 하고 여관비를 대줬는데 변호사가 기자들에게 도둑놈이라고 인정한 것이 제정신이냐고 패악을 부렸다. 그리고 덧붙였다.
“사실 전 대도와 살기 싫었어요. 그런데 대도가 워낙 험하게 잡고 있어서 그랬을 뿐이예요. 맞아죽을까봐 도망가지 못한 거죠. 대도는 자기가 자리를 비울 때면 다른 사람을 시켜 저를 감시했어요.”
일본에서 오랫동안 징역을 살 대도가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진 것일까. 그녀에게 나는 무엇일까. 그녀는 인터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녀를 만난 기자들이 내게 와서 전했다. 돈만 아는 나쁜 변호사놈이라고 욕을 하더라고. 대도도 일본 감옥에서 한국 기사를 보고 나를 욕하더라는 말도 전해져 왔다. 내가 폭 망했다고 빈정대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