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28] 일본 원정 절도 갔다 잡혀…능숙한 연기와 거짓말
장물아비와 부인 둘 중 누가 거짓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햇빛이 좋은 창가에 의자를 하나 놓았다. 내 방의 구석에는 뿔 모양의 작은 종유석 조각이 있다. 대도와 오랫동안 거래를 했던 남자가 내게 선물을 한 것이다. 그는 대도가 훔친 보석을 처리하던 장물아비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그가 대도편을 들어주고 그를 끝까지 위해주는 유일한 친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깡마르고 강인해 보이는 그는 눈빛이 예리했다. 오래 호흡을 맞춘 인연인지 그는 대도의 내면까지도 꿰뚫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대도가 늙으면 좀도둑이 되어 비참한 인생을 마칠 것이라는 예언까지 내게 했다. 그는 대도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범죄세계에서 살던 사람들은 피차 서로 만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멀리서 대도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림자 같은 서늘함을 풍기는 사나이였다.
대도와 인연을 끊은 지 2년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대도의 범죄를 막으세요. 힘들더라도 그의 재범을 꼭 막아야 합니다. 특히 일본가는 걸 제지하세요. 요즈음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죠?”
내가 되물었다.
“한국 도둑들이 일본으로 원정을 많이 갑니다. 제각기 가도 장물은 한곳에 모이게 되어 있죠. 그런데 대도가 엔화도 가져오고 보석도 가져온다는 우리 계통의 정보가 있어요. 일본은 은행 이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부잣집에 현찰들이 많아요. 대도가 5억 정도 현찰로 엔화를 바꾸어 갔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거기다 보석도 맡겼다고 그러더라구요. 아마 대도는 훔쳐오고 그 부인이 돈을 은밀히 관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여자 사업을 한다고 했는데 새빨간 거짓말이예요. 전에 뭘했는지 의문인 여자예요. 이 정도면 대도가 틀림없이 일본에 가서 일을 벌이는 거니까 빨리 막으시라구요. 대도는 범죄인도 참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가 만약 다시 도둑질을 한다면 감옥에 있는 수만명에 대한 사회의 눈길이 얼음같이 차가워질 겁니다. 변호사님이 막아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의아했다. 대도는 이제 부자였다. 대기업인 경비업체 임원으로 한 달에 받는 급료와 신앙 간증비만 해도 고소득자였다. 후원금도 많다고 기자들에게 전해 들었다. 그가 왜 거액의 돈이 필요한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대도를 급히 찾았다. 주소도 전화번호도 알 수가 없었다.
며칠 후 기어이 일이 터졌다. 대도가 동경 시부야지역의 부자집을 털다가 경찰의 총에 맞고 체포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대도 주위에 들끓던 사람들이 모두 안개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를 모델로 내세워 회사 홍보에 이용하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닫고 숨죽이고 있었다. 기자들이 찾아와 내게 묻기 시작했다. 시민들로 부터 항의전화가 집으로 빗발쳤다.
“나라 망신시키려고 그 따위 도둑놈을 변호하셨구만”
내게 욕을 하는 전화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소식이 끊겼던 대도의 부인이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놀란 표정이었다.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
“그이는 신앙 간증을 하기 위해 일본에 다녔어요. 우에노공원의 노숙자들에게 전도를 하기 위해 일본에 간 거예요.
도둑질을 하러 간 게 아니예요. 그이는 태어난 아들을 너무 사랑했어요. 그 아들에게 아버지가 도둑놈이었다는 멍에를 씌우지 않기 위해 차라리 먼 나라로 이민을 갔으면 좋겠다고 하던 분인데 왜 도둑질을 하겠어요? 그리고 일본에서 돈이 필요했다면 서울에서 내가 바로 송금해 줬을 텐데요. 사실 그동안 남편이 집에 들여온 돈이 없어요. 생활비도 전부 제가 사업을 하던 돈으로 썼었죠.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제 사업도 형편이 좋지를 않아요. 집에 돈이 없지만 제가 어디서 돈이라도 꾸어다가 비행기표를 사드릴 테니까 변호사님이 일본을 다녀와 주세요. 그래도 급할 때는 변호사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미리 정보를 알려준 대도의 옛친구와 그 부인의 말이 너무나 달랐다. 둘 중의 한 사람은 거짓이 분명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