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27] 방송이 만든 가면들…김호중은 지금 무슨 생각할까?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5월 21일 오후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옆에 조남관 변호사가 동행하고 있다. 

요즈음 가수 김호중씨의 음주운전 뺑소니 뉴스가 연일 나오고 있다. 변호사 시각에서 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심하게 비난받는 본질이 뭘까. 위선과 언론이 만들어 허상이 벗겨지니까 그런 건 아닐까.

요즈음 인터넷을 보면 ‘개통령의 갑질’이라는 뉴스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유명한 개 조련사가 등장하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 덤벼드는 개에게 물려가면서까지도 그 개를 달래고 사랑으로 보듬어 안는 마술사였다. 그가 데리고 있는 직원들에게 그동안 심한 갑질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언론이 만들어 준 가면과 실체를 혼동하는 건 아닐까. 그들은 본래의 모습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인간극장’이라는 텔리비젼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그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화면들이 더 진솔하게 마음에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진실한 방송에 등장하는 인물이 위선을 부리는 연기자라면 어떨까? 그걸 알면서도 방송이 그를 선인으로 만들면 시청자와 국민을 속이는 게 아닐까.

대도 사건과 연관이 되면서 내가 본의 아니게 그런 방송의 소품이 된 적이 있다. 대도와 헤어진 지 1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에게서는 단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나도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집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돈 많은 후원자가 해주는 그의 화려한 결혼식에 초청받은 기억이 없다. 그는 점점 더 잘나가는 것 같았다.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소리가 들리고 사회적으로 유명 인사급이 된 것 같았다. 그가 매달 벌어들이는 수입도 많고 후원금도 쏟아진다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날 갑자기 대도가 나를 자기 아파트로 오라고 초청했다. 아이가 백일이 됐다는 것이다. 사실상 마음의 끈이 끊어진 상태인데 그가 나를 부를 이유가 있을까 의아했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그의 보호자라는 내면의 의무감이 발동했다. 나는 사직동에 있다는 그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부인이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기를 보면서 ‘네가 세상에 나오는데 내가 일부지만 기여를 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아기가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했다.

안방에는 푸짐하게 음식이 차려진 상이 놓여 있었다. 문득 대도가 감옥에 있을 때 말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해 겨울 아침 교도관이 감방 안에서 떨고 있던 대도에게 신문지에 싼 고기 몇점을 몰래 던져주더라는 것이다.

그런 비참한 굴레에서 벗어나 대도는 따뜻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는 행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70대 쯤의 남자가 먼저 와서 그 방에 앉아 있었다. 대도가 어린 시절 그를 검거한 형사라고 했다. 그와 마주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왕년의 형사는 감회 서린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젊었을 때 대도를 잡아서 소년원에 넣기도 했는데 이제는 같은 경비회사의 임원이 됐어요. 세상을 오래 살면 여러 경우가 생기는군요.”

그때 반쯤 열려진 방문 밖이 수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문틈으로 커다란 방송국 카메라를 어깨에 멘 남자가 아기를 안고 있는 대도의 아내를 촬영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도의 부인은 피디의 요청에 따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능숙하게 세 번 네 번 다시 연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카메라가 형사와 내가 밥을 먹는 방으로 들어왔다. 대도가 방에 들어와 내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내 일생에 가장 잊을 수 없는 분이 엄 변호사입니다.”

이어서 대도는 내 앞에 있는 남자를 보고 말했다. “박 형사님은 제가 어린 시절 그래도 저를 보호하고 인도해주셨던 모범경찰관이셨습니다.”

우리를 보는 카메라에서 빨간불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대도가 흰 봉투를 내게 건네면서 말했다. “제가 도둑질 하지 않고 처음 번 돈입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엄 변호사님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감동적인 장면들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대도의 아파트를 나와 그날의 촬영을 마친 피디와 우연히 함께 길을 걷게 됐다. 30대 말쯤의 수더분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어떤 존재가 자꾸만 ‘아니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피디에게 물었다.

“지금 만드시는 프로그램이 정말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줄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가 대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가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며 대답을 꺼렸다. 나는 사실 그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렇지만 대도와 관련해서 이미 방송사고를 저지른 입장이었다. 밥상 앞에서 내가 망설이는 순간 몇 초 동안의 촬영이 끝나버린 것이다. 한참을 침묵하던 피디가 헤어지는 순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촬영을 하다보니 대도의 참회는 아무리 봐도 가짜인 것 같았습니다. 그 부인도 능숙한 연기자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방송국 직원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촬영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미 회사에서 결정한 프로라 어쩔 수 없이 계속 찍었습니다.”

그 방송이 나가고 대도는 더 잘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가 호화빌라를 샀다는 소리도 바람결에 들렸다. 그는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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