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29] “일본의 세콤 테스트 위해 들어갔다”는 말에 나는 절망감이 들었다

철창에 갇힌 대도

바닷가 나의 집으로 오후 늦게 예쁜 꼬마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변호사인 사위와 친구인 변호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온 것이다. 적막했던 집에 열한 살, 열 살, 여섯 살 세 꼬마들의 새같이 짹짹거리는 투명한 소리가 가득 찼다.

“할아버지 라면 좀 끓여주세요. 배고파요”

손자가 나를 보고 졸랐다. 나는 찾아온 손님들을 데리고 근처 중국음식점으로 가서 저녁을 사먹였다.

밤늦게 막걸리와 구운 한치를 안주로 앞에 놓고 변호사 세 명이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사위가 하는 법무법인의 소속원으로 아직 이름이 걸쳐져 있다. 낡았어도 언젠가는 쓸 데가 있을 지 모르는 칼집 속의 칼 역할이라고 할까. 사위의 친구인 김 변호사가 내게 물었다.

“요즈음 쓰신 대도사건을 읽는데 예전에 사건을 하실 때 철저히 메모를 해두신 것 같아요”

“그랬지. 그리고 그걸 되새김해서 수시로 글로 만들어 보관해 뒀지 그 과정에서 나의 잘못이나 미숙한 점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많았어. 그 사건이 던진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기도 했고.”

“그런 걸 20-30년이 지난 지금 발표하시는군요.”

“사건을 처리하고 10년 후 그리고 20년 후 30년 후가 완전히 달라지더라구. 사건도 사람도 의미도 전혀 다른 색깔이 된다니까. 묵은 장 같이 하나의 경험도 세월이 숙성을 시켜준다고 할까.”

그런 말을 하는 나의 뇌리 속에 어둠이 내리는 동경 시부야의 성채 같은 부잣집들 모습이 실루엣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도가 총을 맞고 검거된 동네였다. 그 보도가 난 며칠 후 나는 동경으로 갔다. 먼저 주일대사관에 들려 대외협력담당관에게 대도사건에 대해 물어보았다. 담당관은 수서경찰서장을 하다가 파견나간 총경이었다. 그는 일본경찰과 협조하는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대도가 서바이벌 나이프를 가지고 일본 경찰에 대항하다가 총에 맞았습니다. 범죄사실도 시인했습니다. 목격자도 여러 명 있습니다.”

나는 이어서 시부야 번화가 네거리 한 켠에 있는 경찰서로 갔다. 8층 건물의 수사과는 4층에 있었다. 신문사 편집국 비슷하게 작은 철 책상들이 넓은 공간에 줄지어 있었다. 그곳에서 수사계장인 야마구찌 경부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체포 경위를 성실한 어조로 이렇게 말해주었다.

“시부야의 집집마다 설치된 방법시스템은 절도범이 들어와도 경고음을 내지 않습니다. 소리 없이 경찰서에만 신호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경찰은 그 집이 아니라 온 동네를 그물같이 포위하고 좁혀 들어갑니다. 도둑이 그 집에서 나온다 해도 이중 삼중으로 쳐진 포위망을 뚫을 수 없죠. 방범시스템은 도둑이 움직인 경로나 들어간 집들을 모두 체크하고 있습니다. 대도는 그걸 모르고 시부야의 여러 집들을 드나들고 나오다가 체포된 겁니다. 컴퓨터 시스템에 대도의 행동이 다 입력이 되어 있습니다. 핵심은 그가 훔친 물건들의 내용입니다.”

그가 뭔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덧붙였다.

“대도가 공사장에서 알게 된 일본인 아키라가 공범입니다. 대도가 침투할 도구도 빌려주고 사다리도 놔주고 망도 봤습니다. 그 아키라가 잡히면 구체적인 절도내용이 객관적으로 판명될 겁니다. 검사는 일단 주거침입과 공무집행방해 그리고 총포 도검에 관한 법률위반만 기소하기로 했습니다. 공범 아키라를 잡으면 그동안 절도행위를 한 품목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찰의 수사는 치밀한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수사과에서 나와 빌딩 8층의 유치장으로 갔다. 그곳에 대도가 수감되어 있었다. 면회절차를 밟았다. 면회 시간은 20분이었다. 구석의 빈 방에서 10분쯤 기다리니까 주황색 일본 죄수복을 입은 대도가 나왔다. 총에 맞은 어깨에 석고붕대를 하고 있었다. 그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속으로 그가 정말 내가 반가운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속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어떤 존재인지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서 간 것인지도 몰랐다.

“왜 그랬어요?”
그 대답에 따라 나의 태도를 결정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내가 도둑질을 할 리가 있습니까? 일본의 세콤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 들어간 겁니다. 그보다 저는 이 일이 한국 언론에 알려질까봐 진땀이 나요. 그래서 다른 사람인 척하면서 밀항했다고 일본 경찰관들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는 한국에서 이미 보도가 된 줄 모르고 있었다. 절망감이 들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