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24] 종교팔이 장사꾼
7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나는 내가 무심히 내뱉은 말에 묶여 고생한 적이 많다. 즉흥적으로 큰소리를 치고 뒷감당을 못해 절절 매는 것이다. 사정이 변했다면서 그 말을 거두어드리면 될 텐데 알량한 체면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성격이다. 아내는 그런 나를 한심해 하면서 ‘자기 의(義)에 묶여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극히 소심하다고 할까.
30년전 대도를 재판하는 법정에서도 그랬다. 나는 대도가 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라도 데려갈 테니 석방시켜 달라고 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튀어나간 말이었다. 좀더 솔직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게 할 마음이 없었는데 내면의 어떤 존재가 일방적으로 내 입술이 그런 말을 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내가 아닌 어떤 존재가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나를 조종하고 가지고 놀 때가 많았다.
그게 뭘까? 어떤 때는 성령 같고 어떤 때는 악령같기도 했다. 나의 자의식도 있는 것 같았다. 하여튼 그때 그 말을 내뱉은 죄로 나는 대도에 대한 강한 의무감에 묶여 있었다.
그가 석방이 되면 노숙자 시설에 묵게 하면서 봉사하는 삶을 살게 하고 싶었다. 대도가 그걸 거절했다. 나는 아는 목사에게 부탁해 대도를 서울 근교의 기도원으로 보냈다. 대도는 이상한 나라에서 보통 사람의 세계로 들어온 어린아이인 셈이었다. 죄의식이라든가 도덕의식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혼자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영혼이 다시 태어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가 석방된 지 며칠 후 해가 질 무렵 나는 경기도에 있는 기도원으로 갔다. 서울의 큰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대도가 뛰어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대도가 묵는 기도방으로 가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작고 소박한 방이었다. 상 위에 성경 한 권 놓여 있었다. 그와 함께 기도원 사무실로 갔다. 그곳에 막 도착한 그랜저 승용차가 보이고 안에서 배가 불뚝한 50대쯤의 남자가 나왔다. 부목사라는 사람들이 나와 도열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신하같이 황송해 하는 태도였다. 기도원과 교회의 책임자인 당회장 목사였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 대도를 받아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잠시 후 나는 기도원에 있는 그의 방에 마주 앉았다. 부목사라는 사람들이 옆에 서서 회장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당회장이라는 목사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자세로 입을 열었다.
“대도가 여기 기도원에서 며칠 동안 잘 생활하고 있어요. 내 생각으로 훈련 좀 시키면 앞으로 좋은 부흥강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대도를 키워주려고 생각하는 중이야. 양복도 한 벌 해주라고 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몰라.”
그가 옆에 서 있는 부목사를 보며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대도를 끌어들여 그의 종교사업에 이용하려는 것 같았다. 그가 이번에는 나를 보고 말했다.
“내가 움직이는 교회 돈이 그래도 몇백억이 되는 데 말이요. 엄 변호사가 나와 관계를 맺으면 우리 교회 사건들도 맡고 좋을 거요.”
그가 내게 보이는 호의 같기도 하고 거드름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내 입에서 말이 튀어 나갔다.
“그 돈이 신도들 돈이고 하나님이 맡겨놓은 재물이지 당신 개인 돈입니까?”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옆에 있는 대도에게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갑시다.”
그가 자기 방으로 가서 짐을 싸서 세워놓은 내 차로 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기도원의 그 목사 순 엉터리 장사꾼 같아요. 양복 한 벌 해주고 날 이용하려는 것 같아요. 그가 부흥회 하는 걸 옆에서 구경했는데 종교 장사도 한번 해 볼만 하겠더라구요. 음악을 잘하는 사람을 고용해서 사람들 혼을 빼놓고 할렐루야 하면서 그럴듯한 간증을 하면 돈을 많이 벌 것 같아요.”
감옥에서 나온 그에게 마귀들이 먼저 방문하는 느낌이었다. 평생을 범죄의 세계에서 살아온 그는 선보다 악을 관찰하는 데 더 민감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