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25] 빨간치마 여자의 정체는?

돌아오는 길에 대도가 이런 말을 했다. “차라리 내가 종교단체를 하나 만들어 운영하렵니다. 간증을 다녀 보니까 음악 반주 잘하는 사람 하나만 고용하면 꽤 잘 될 것 같아요. 부흥회 하는 목사놈들 뒤에서 보니까 다 사기꾼이던데 뭘.”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본문 가운데)

변호사인 나는 사건을 통해서 인간을 보고 세상을 배워왔다. 사회의 양면성을 보았다. 대도가 감옥에서 짐승같이 지낼 때는 외면하던 전국의 교회에서 그를 경쟁적으로 초청했다. 대도는 단번에 신도들이 열광하는 기독교계의 일타강사가 됐다.

그는 불어오는 세상의 강한 바람을 받고 날개를 활짝 편 채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초청한 교회가 그의 말씀을 들으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호주 등 해외에도 진출했다. 범죄 세계에서 보통사람의 세상으로 넘어온 그는 아직 어린아이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참회는 입술에서 머물었고 그는 보여줄 선행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열광하는 신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교회뿐만 아니라 장사꾼들이 그의 주변에 꼬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대도가 화장품 회사 사장 부인을 동생 삼기로 했다면서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바닷가 호텔 베란다에서 반바지를 입고 의자에 누워 포즈를 취한 모습이었다.

대도는 나와는 계급이 다른 부유층으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내가 감옥에서 나올 때 마련해준 한복을 입지 않았다. 그런 옷 입기가 부끄럽다고 했다. 목사들이 설교할 때 꼭 좋은 양복을 입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나를 불편해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는 의리를 지키려는 한 가닥 채무감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가 나의 사무실로 한 여성을 데리고 왔다. 빨간 치마 저고리에 짙은 화장을 했다. 대도는 그녀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 여자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났는데 앞으로 결혼할 겁니다. 자동차 백미러를 만드는 공장을 하고 있대요.”

그 여성은 재빨리 내 사무실을 살피면서 저울질 하는 눈빛이었다. 다섯평짜리 소박한 법률사무소였다. 대도가 그녀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봐 당신한테는 시아버지뻘 되는 엄 변호사님이야. 인사해”

그녀가 고개를 까딱했다. 그 눈동자에는 원인 모를 아니꼬움 같은 게 비치는 느낌이었다. 표정은 나한테 굳이 인사할 필요가 없는데 마지못해 와줬다고 말하고 있었다. 대도가 어색한 분위기를 얼버무리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이 여자가 엄변호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 빨간 치마저고리를 골라서 입고 왔다니까요.”

잠시 후 나는 그들을 사무실 근처의 단골 칼국수집으로 데리고 갔다. 여자의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밖에 대접을 받지 못하느냐는 얼굴이라고 할까. 나는 대도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소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부인이 될 사람은 그런 사람이어야했다. 허름한 칼국수집은 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런 의미였다. 국수를 주문하고 내가 대도의 여자에게 물었다.

“믿음을 가지고 계세요?” 진실한 믿음이 그들에게 꼭 필요할 것 같았다.

“저는 독특한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죽은 사람도 보고 영혼을 보는 능력도 있어요.” 여자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귀신과 영혼에 관한 얘기를 혼자 계속했다. 일종의 영적 오만 같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탐탁치 않아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대도와의 관계가 힘들어지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내 역할이 끝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에게 책임의식과 의무감이 있었다. 그가 가는 길이 옳지 않은 것 같았다. 세상의 바람에 높이 떠올라간 그가 날개도 없이 추락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미 나는 그에게 아무 영향력이 없지만 마지막 노력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남양만에서 두레마을을 하는 김진홍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대도와 함께 그곳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용히 대도를 불러 내 생각을 얘기했다.

“그렇게 인터뷰나 무대에 서서 간증만 하지 말고 낮은 데로 내려가 땀을 흘리는 노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어떨까요? 농장에서 다른 신도들과 함께 겸손하게 일하면서 기도하는 삶이 자신이나 세상에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내 말을 듣는 순간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모멸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석방된 도둑일 뿐이었다. 스타가 아니었다. 성자도 아니었다. 자신에 대해 착각할 뿐이었다.

나는 그를 강제로 남양만의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에게 데리고 갔다. 김진홍 목사가 그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거기서 노동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는 진짜 성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희망일 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대도가 이런 말을 했다.

“차라리 내가 종교단체를 하나 만들어 운영하렵니다. 간증을 다녀 보니까 음악 반주 잘하는 사람 하나만 고용하면 꽤 잘 될 것 같아요. 부흥회 하는 목사놈들 뒤에서 보니까 다 사기꾼이던데 뭘.”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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