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31] 죽음만이 그의 절도 중독을 끊을 수 있을까?

대도(大盜) 조세형씨가 2005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7세였다. <사진 연합뉴스>


고려대 법과대학 시절 최달곤 교수님이 강의한 내용은 기억이 바랬지만 이 말만은 평생 가슴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흔히 술이나 도박, 여자에게 중독될 수 있죠. 그건 광범위하게 인간에게 퍼져있는 것이니까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어요. 그런데 권력에 중독되는 건 그렇지 않아요. 특수하기 때문에 이해받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약보다 더 정신이 피폐해 질 수 있어요. 여러분은 고시에 합격하더라도 꼭 명심해야 합니다.”

그 후 나는 살아오면서 권력 중독자를 많이 봤다. 나이 팔십이 되도록 선거 때만 되면 몰래 가서 후보 등록을 하고 가족을 속 썩이는 법대 선배를 보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되어 한 번 권력의 맛을 보면 중독이 되는 것 같았다.

엄청난 경쟁율을 뚫고 소녀시절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미녀 여배우와 사건의 의뢰인 관계로 알게 됐다. 세월이 가고 그녀는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걸 봤다. 주역이 아니고 조역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만난 자리에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드라마가 끝나고 출연진이 동남아에 가서 쫑파티를 하기로 했죠. 주인공이 여왕처럼 떠받들어지는 걸 보니까 인기가 높던 왕년이 떠오르더라구요. 인기도 중독이예요. 거기 빠지면 안 돼요. 나는 연기가 끝나면 아이를 키우는 보통의 주부로 돌아오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요.”

그녀는 중독의 위험에서 벗어난 현명한 여성이었다. 인간이란 자각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내남 없이 어떤 중독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탐욕도 위선도 중독이다. 남 탓도 다 중독이 아닐까. 다만 중독에도 그 종류와 질이 다양하다. 한 단계 아래의 중독이 술 중독, 도박 중독, 마약 중독 같은 게 아닐까.

변호사를 하면서 중독성 관음증 환자도 본 적이 있다. 멀쩡한 택시기사가 남의 집에 숨어 들어가 몰래 부부의 섹스를 훔쳐보다가 징역을 살았다. 나는 차라리 창녀촌에 가서 해결하지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관음증도 중독성이 있어서 창녀촌은 싱거워서 아무런 재미가 없다고 했다.

오늘 내가 중독을 얘기하는 것은 대도의 경우도 도둑질에 중독된 게 아닌가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중독은 도덕이나 참회의 잣대로만은 재기가 힘든 것 같다.

나의 추론을 확인시켜 준 것은 대도 사건에서 뜬금없이 나타나 이따금씩 대도의 행동을 해석해주고 예측까지 해준 나레이터 역할을 한 장물아비였던 남자다. 그는 신비한 인물이었다. 도둑 세계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대도가 일본의 감옥에서 징역을 살고 있던 어느날 장물아비인 그가 불쑥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지나가다가 들렸다면서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변호사님은 대도가 왜 일본에서 다시 도둑질을 시작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도는 독지가들로부터 받은 성금도 매월 상당액이 됩니다. 경비회사 임원으로 취직을 했으니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죠. 그런데도 왜 다시 도둑질을 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양심에 울리는 보통사람들은 하라고 해도 도둑질을 하지 못한다. 도둑질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프로의 세계에는 나이가 없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대도는 프로예요. 도둑질 그 자체에서 오는 스릴이라고 할까 짜릿한 쾌감 때문에 하는 겁니다. 세상에서 빛을 비추어 주어도, 돈이 있어도 그걸 하는 거예요. 제가 예를 들어볼까요?”

“해보시죠.”

“제가 젊은 시절 대도와 함께 인사동의 한 여관 2층에 묵은 적이 있어요. 그 방에 예쁜 선풍기가 있었어요. 대도는 그걸 훔치겠다고 했어요. 사실 우리 주머니에는 거액의 현찰이 있었어요. 지폐 몇 장을 주면 당장 살 수 있었지만 대도는 그게 아니었어요. 걸리지 않고 훔치는 그 쾌감을 즐기는 거죠. 대도는 점퍼 안에 그 선풍기를 넣고 창문을 통해 여관을 내려왔죠. 대도에게 도둑질은 그런 쾌락이었습니다. 다른 예를 하나 더 알려드리죠. 제가 대도와 함께 조선호텔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죠. 대도가 말없이 잠깐 나갔다가 훔친 물건이 든 가방을 가지고 오는 거예요. 그건 탐욕도 필요도 아닌 제삼의 특질이죠. 지독한 중독이라고 할까.”

“그러면 일본에서 징역을 다 살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대도는 그 앞날이 어떨까요?” 나는 그 부분이 궁금했다.

“사람에 따라 도둑질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대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비참해질 걸로 봅니다. 칠십 정도부터는 좀도둑으로 변할 겁니다. 힘이 없어지니까요. 변호사님은 더 이상 대도를 도와주지 마세요. 도와줘도 이용하려고 하지 참회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그 친구를 저주하는 건 아닙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그 친구를 사랑하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으니까요. 먼 훗날 그 친구가 진짜 참회한다면 그때 가서 저는 도울 겁니다.”

그 후 다시 세월이 흘렀다. 일본 감옥에서 형기를 마친 대도가 다시 돌아와 생활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더이상의 인연은 없을 것 같았다.

어느 날이었다. 텔리비전 뉴스에 대도가 나오고 있었다. 마포 부근에서 좀도둑질을 하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검거됐다는 것이다.

“대도 맞죠?”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대고 묻고 있었다.

“아니예요, 저는 그냥 노숙자예요.”

대도가 졈퍼로 얼굴을 가린 채 목소리를 변성시켜 말하고 있었다. 중독으로 대도의 영혼은 죽은 것일까. 죽음만이 그 중독을 끊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왜 대도 사건에 매달렸을까. 세상은 나를 왜 대도의 분신으로 여기고 조롱하고 돌을 던질까. 어떤 변호사도 그가 맡은 피고인과는 별개다. 그런데 나는 왜 혼이 나고 있을까.

그의 도둑중독은 내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 책임이다. 세상 무대에서 대도의 배역을 준 것도 그분이다. 단단히 따져 물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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