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19] 서민의 분노와 권력의 분노
대도 사건을 통해 나는 두 계층의 분노를 보았다. 하나는 서민의 분노이고 또 하나는 권력층의 분노였다. 어느 날 법정 앞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그냥 파주에 사는 시민입니다. 대도 재판을 구경하러 왔습니다. 지난번 김영삼 대통령 아들 현철이의 청문회 때도 직접 가서 봤습니다.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그렇게 봐주면 되겠습니까? 또 얼마 전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의 마약 재판을 받았습니다. 벌써 마약으로 여러 번 구속이 되어 가중처벌이 마땅한데 벌금이 구형됐습니다. 민주국가라고 하면서 ‘왕자와 거지’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가요? 저는 대도를 차라리 불쌍한 인간으로 봅니다. 제가 언제 한번 구치소로 찾아가 영치금이라도 넣어줄 예정입니다.”
그건 서민의 분노였다. 반면 대도사건에서 권력의 분노도 보았다. 법조인의 산행 모임 후 회식 자리에서였다. 법원장, 검사장을 비롯해 법조계 고위층의 모임이었다. 나는 우연히 그 자리에 끼어 있었다. 그 자리에는 그 15년 전 대도를 기소한 담당 검사도 앉아 있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가정법원장이 나를 보고 물었다.
“엄변호사, 대도를 변호한다고 신문에서 봤는데 어떻게 됐어? 석방됐어?”
“기각됐습니다. 절도범으로 징역삼십육년의 징역형 기록을 세울 것 같습니다.”
그 정도의 기간을 감옥에서 보낸다면 일생을 갇혀 사는 셈일 것이다. 예전 그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사가 내 말을 듣더니 이런 말을 내뱉었다. “내가 그 새끼를 담당했는데 한마디로 얼굴부터 발끝까지 온통 악으로 뭉쳐진 놈이야.”
나는 한 인간에게 퍼붓는 그의 저주같은 말을 들으면서 얼핏 납득할 수 없었다. 어떤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피디수첩이라는 시사 프로그램과 인터뷰에서 대도를 업무과정에서 본 평범한 절도범이라고 하면서 얼굴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한 인간 자체를 매도하는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이의를 제기했다. 바닥 인생에 대한 그의 선민의식이 느껴졌다.
“정말 악질이라니까. 보면 알잖아?”
“어떻게 겉만보고 악인인 걸 그렇게 압니까? 나는 봐도 모르겠습니다. 대도가 저에게 담당 검사를 끌어안고 15층 검사실에서 유리창을 뚫고 바닥으로 떨어져 같이 죽으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게 뭘까요?”
대도는 그에게 배신감이 있었다. 범죄를 축소하면서 가벼운 처벌을 약속했는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는 것이다. 검사인 그가 대도에게 가지는 증오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니 지금 자네 나한테 협박하는 건가? 난 이미 아무런 힘이 없는데 그놈이 나오면 난 죽겠네. 경호해 줄 사람도 없고. 여러분 전 어떻게 하죠?”
그가 참석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청하듯 말했다.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내 옆에 있던 부장검사가 나를 보고 말했다. “당신 왜 선배한테 그런 말을 해? 당장 사과해.”
나는 분위기에 주눅이 들면서 일단 사과를 했다. 나는 대도의 심정을 전한 것일 뿐인데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건지 그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리가 서먹서먹해지고 모두들 떠나갈 때였다. 숯불을 나르던 청년이 내게 다가와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엄 변호사님이시죠. 제가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전 저분들같은 권력자를 좋아하지 않아요. 힘없고 어려운 사람 편에 서는 엄 변호사님을 존경한단 말입니다.”
“저런 저런 고얀놈이 있나?”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왜 법조계의 고위층들은 그 숯불나르는 청년을 나쁜 놈이라고 하면서 화를 냈을까.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층계급의 반항에 속으로 분노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대도 사건을 처리하면서 세상도 정서적으로 확연히 나누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대도의 악성만 파고드는 언론이 있었다. 그걸 보고 세뇌가 되어 앵무새같이 떠드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심판관의 자리에 앉아 남을 정죄하기에 바빴다. 그런 사람들이 던지는 비평에는 얼어붙을 것 같은 냉기가 서려 있었다.
세상의 밑바닥에는 또 다른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미국에 이민간 사람들 중 몇명이 전화를 통해 내게 격려의 말과 작은 성금을 보내왔다. 호주의 교민들이 대도 사건에 관한 말을 듣고 싶어 나를 초청하기도 했다. 그들은 단체로 대도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써 주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 일을 맡았나를 중간에 점검해 보았었다. 사건을 맡게 된 동기는 노숙자들을 돌보는 전과자 출신 목사의 단순한 부탁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대도가 누군지 몰라요. 물방울다이어 도둑이라는 것밖에. 그렇지만 팔다리를 뒤로 묶인 채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감옥에서 살고 있다는 거예요. 밥도 개처럼 엎드린 채로 핥아먹는대요. 나도 감옥에 살아봤지만 정말 그렇게는 며칠도 살지 못할 것 같아요. 그냥 부탁하는 겁니다.”
나도 그냥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심정으로 그 사건을 맡았다. 죄와 악성보다 극한의 고통에서 일단 사람을 구하자는 게 먼저였다. 잔인한 언론도 있었지만 바른 의견의 칼럼들도 있었다. 참여연대의 박원순 변호사는 대도 사건의 본질은 인권과 제도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칼럼을 썼다. 대도 사건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라는 것이다.
<문화일보> 김광원 사회부장은 총 36년의 감옥생활을 앞둔 대도의 절도사건에 대해 군사정권의 억압 시대 소설같은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이었다고 했다. 그는 깜깜한 먹방에서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보다 더한 참혹한 고통을 받게 하는 게 좋은 세상이냐고 따졌다.
눈밝은 젊은 기자들도 있었다. 하루는 <동아일보>의 이수형 기자가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 “저희같은 젊은 기자들은 사실상 동정 의견입니다. 사실 누가 봐도 뻔한 거 아닙니까? 권력을 가진 높은 놈들이 진짜 도둑놈 아닙니까? 몇 배 죄값을 치렀는데 다시 10년을 더 살라는 건대요. 뭐 그놈들은 금테 둘렀습니까?”
나는 그래도 소수지만 온기를 가진 ‘사랑의 인간’을 보았다. 그들의 덕으로 대도는 자유를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