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탈주범 신창원을 위한 변명…”한 인간을 보았다”

“나는 엉뚱하게도 탈주범 신창원한테서 죄인이 아니라 인간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여름날 한밤중이었다. 도주중인 그는 원룸이 모여있는 지역에 차를 세웠다. 그는 차에서 내려 한 건물 배수관을 타고 올라가 때마침 창문이 열려있는 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 여자가 아직 자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신창원

부장판사를 하다가 변호사를 개업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판사를 할 때는 죄인만 보였는데 지금은 인간이 보여. 그 가족이 우는 것도 보이고 말이야. 변호사로 교도소에 가서 오랫동안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니까 마음이 흘러가는 거야. 내가 다시 판사를 한다면 예전같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야. 명절이면 이왕이면 그 전에 석방 시켜주는 배려도 할 거야. 높은 의자에 앉아있을 때는 그게 보이질 않았거든”

광어는 한쪽으로만 눈이 몰려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법조인도 그런 것 같다. 검사는 범죄자를 보고 이면에 어떤 악성과 죄를 숨기고 있을까에 관심을 두고 시선을 집중한다. 미꾸라지같이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하다 보니 자칫하면 자신의 눈이 사시가 되기 쉽다.

판사는 어떨까. 법대 아래서 재판을 받는 존재가 하나의 인간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처리해야 할 사건기록으로 보일 수 있다. 세상과 사람을 법조문과 판례라는 필터를 통해서만 보게 될 수도 있다. 믿지 못하는 불신의 직업병이 걸려있기도 하다. 증거를 코 앞에 들이 밀어도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속에서 그들이 인간으로 보인다는 것은 영혼의 개벽이다.

기독교인들의 조찬모임에 초청되어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탈주범 신창원을 변호할 때의 일들을 섞어서 얘기했다. 교회 권사라는 부인이 내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어떻게 그렇게 흉악범을 미화시킬 수 있어요?”

그 부인의 뇌리에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알려준 흉악범이란 인식만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언론의 부정적 시각이 사람들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탓이기도 하다.

언론보도를 보면 그들이 검사나 판사의 시각이 되어 먼저 기소장이나 판결문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그대로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것이다. 교인 중에는 자기 교회만이 최고이고, 자기 목사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자기들만 가장 성결하다는 종교적 교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남들보다 한 단계 높은 위치에서 남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그들에게 인간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가슴도 따뜻하지 않은 것 같다. 말라버린 강바닥 같이 사랑도 없었다. 그들은 속에 썩은 뼈가 가득 들어있는 성경이 말하는 회칠한 무덤인지도 모른다.

나는 범죄인보다 그런 교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나쁜 것 같다. 예수는 그런 존재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했다.

나는 엉뚱하게도 탈주범 신창원한테서 죄인이 아니라 인간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여름날 한밤중이었다. 도주중인 그는 원룸이 모여있는 지역에 차를 세웠다. 그는 차에서 내려 한 건물 배수관을 타고 올라가 때마침 창문이 열려있는 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 여자가 아직 자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겁을 주거나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달래고 사정해서 그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오랜 도주생활이 가능한 이유는 사람들의 연민과 동정이었다. 그는 여자에게 자기의 도주중인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밥은 제대로 먹고 도망 다니는 거예요?”

그 여자는 그가 밥을 먹지 못한 걸 알아채고 싱크대에서 된장찌개를 끓여 남은 밥과 김치를 올린 상을 차려주었다. 오랫 만에 뜨거운 찌개를 먹으면서 그는 울컥했다. 그 여자도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하고 대학원까지 간 얘기를 했다.

“소원이 뭐예요?”

신창원이 물었다. 신창원은 속으로 따뜻한 정을 베풀어 준데 대한 댓가는 치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주차해 둔 차의 트렁크에는 현찰 뭉치가 가득 든 가방이 들어있었다.

“한번 돈방석에 앉아보는 거예요.”

여자가 무심히 말했다. 그가 잠시 밖에 나갔다가 검은 가방을 들고 들어와 그녀 앞에 내놓았다. 그녀는 지퍼를 열고 그 안에 가득 들어있는 돈을 보았다. 그녀는 말없이 돈다발을 하나하나 꺼내 방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돈다발을 하나하나 가방 안에 넣어 벽 아래 놓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그 집에 당분간 숨어있어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느새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제 가세요. 같이 묵는 동생이 들어올 시간이예요.”

그의 예상이 틀린 것 같았다. 그렇다고 돈을 돌려달라고 하기도 난처했다. 그가 멋적게 문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여자가 돈이 가득 든 가방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저는 이런 돈 필요 없어요. 가져 가세요. 저 하나님 믿는 사람이예요. 밥을 차려준 것도 절박한 사람에게 작은 사랑을 베풀라는 말씀을 따른 거구요. 다시는 나쁜 짓 하지 마세요.”

나는 그 여성에게서 진실한 믿음을 본 느낌이었다. 그녀는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기지 않았다. 그녀는 죄인을 보지 않고 인간을 보았다. 그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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