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황석영의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 ‘비유법’

황석영 작가가 방송에 나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그냥 쉽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 집에 도둑놈이 들어왔는데 이 자가 담에다 사다리를 걸쳐놓고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간 다음 사다리를 두고 간 거야. 그게 식민지 근대화론이지. 이런 명쾌한 걸 가지고 무슨 이데올로기화가 필요해?”

나 역시 대학 시절까지 교과서에서 그리고 고시 과목이었던 국사 논문들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이 사십이 넘고 친일관계 법률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안병직 교수의 책을 보았다.

안병직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36년간 일본이 투자했던 것을 점령자인 미군에게 모두 빼앗긴 채 한국에 고스란히 두고 갔다. 투자한 걸 모두 뺏긴 일본이 과연 한국을 수탈한 것일까. 일제의 수탈론은 객관적으로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24~25년 조선이 무역흑자를 낸 통계를 제시했다. 일제시대 조선의 경제성장율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1930년대는 어땠을까. 나는 일제시대 발간되던 한글 시사잡지 <삼천리>의 1939년 4월호를 읽었다. 사회주의자 인정식은 그가 기고한 논문을 통해 이런 사실들을 적시하고 있었다.

‘일본의 지배를 통해 조선 민족의 일상생활이 구한말보다 향상됐다. 1930년대 일본의 만주 침략에 따른 만주 붐이 조선인들을 들뜨게 했다. 조선 민중은 일본이 만주에 이어 중국침략을 통한 복리와 번영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민족적 저항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전반적인 경제상승과 국민생활 향상을 말하고 있다. 도둑이 무엇을 훔쳐 가지고 갔을까. 물질을 가지고 갔을까. 영혼을 빼앗긴 것일까. 국권은 도로 찾았다.

거꾸로 도둑맞았다고 절규하는 일본인들의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일제 초 이민정책에 따라 한반도로 건너와서 30여년간 살던 가난했던 일본인들이 있다. 그들은 잡화점이나 음식점 등을 하면서 돈을 모아 논밭을 사고 집을 짓기도 했다. 아이를 낳아서 키웠다. 그들은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들에게는 일본이 오히려 낯선 타향이 됐다.

일본이 전쟁에서 졌다. 점령군은 그들의 모든 재산을 빼앗고 일본으로 쫓아 버렸다. 그들은 막상 돌아갈 곳이 없었다. 패전한 일본은 그들을 보호할 능력도 없었다. 그들은 아무리 전쟁이라도 민간인이 투자한 재산을 빼앗는 경우는 없다며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했다. 미군 당국은 그걸 거부했다. 뺏은 재산을 한국인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도둑은 아닌 것 같다.

한반도는 도둑인 일본이 사다리를 담에 걸치고 넘어와 뭔가를 훔쳐 간 남의 집이었을까. 일본은 법을 고쳐 한반도를 아예 북해도나 큐슈처럼 그들 본토의 한 행정구역으로 삼았다. 한반도를 영원한 그들의 집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미국이 텍사스나 캘리포니아를 점령해서 미국화 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들은 새로 얻은 그들의 집을 단단하게 수리했다. 원래의 집보다 훨씬 공들여 인테리어를 하기도 했다.

일본이 한반도에 철도를 깔고 공업지대를 조성한 것 등이 그렇게 보인다. 만주 중국을 겨냥한 그들을 위한 투자였겠지만 그랬다. 한반도에 있는 모든 조선인들이 일본 국적이 됐다. 일본 국적이 되는데 대해 거족적인 저항이 있었을까. 그 당시를 살았던 사회주의자 인정식은 잡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민족 전체가 집단적으로 변절했다고 통탄하고 있었다.

김문수 노동부 장관 청문회를 보았다. 민주당 국회의원이 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에게 물었다.

“일제시대 한국인의 국적이 일본이었습니까?”
“일본이었죠. 손기정 선수도 올림픽에 일장기를 달고 갔잖습니까?”
“일본 국적을 인정하는 저런 사람이 한국의 장관을 한다는 건 맞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이보세요.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였습니다. 국토도 없고 국민에 대한 지배력도 없었습니다. 국적이 임시정부란 말입니까? 현실은 현실로 인정해야죠.”

청문회장이 소란스러워지고 휴정이 된 채 끝이 났다.

안병직 교수는 책에서 우리가 감정적인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자고 했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이론을 가지고 현실을 설명하려는 편향된 역사관을 고치자고 한다.

황석영 작가의 도둑 사다리와 국회 청문회에서 우리 내면의 분열증세를 보는 것 같다. 일본이 따지고 들 때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반론과 근거를 제시할 수 있도록 국민정신이 한단계 올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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