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닷새 후 광복절 79돌….한번 같이 생각해 봅시다”
1920년대 중반경이다. 경북 영덕의 경찰서장 관사에 매일 아침이면 팔뚝만한 삼치 한 마리가 떨어져 있곤 했다. 이상하게 여기고 있던 일본인 경찰서장은 누가 삼치를 자기 집에 던지고 가는지 살펴보았다. 삼치 상자를 지게에 지고 다니는 20대 중반쯤의 꾀죄죄한 모습의 남자였다.
“왜 아침마다 우리 집에 생선을 놓고 갑니까?”
경찰서장이 물었다. 생선 장사가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서장님께서 우리 읍의 치안을 잘 유지해 주시니 덕택에 저같은 사람도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달리 보답할 길은 없고 해서 제가 파는 생선이나마 드려서 아침 밥상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경찰서장이 그 말에 감동하며 물었다. “보아하니 내가 도움을 받을 처지만은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내가 도와줄 일은 없겠소?”
“특별한 부탁은 없습니다. 다만 도매상에서 팔 생선을 좀더 많이 받았으면 하는 건 있죠.”
“그렇다면 내가 생선도매상에 소개장을 하나 써 주겠소”
당시 경찰서장의 소개장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남자는 생선 장사로 돈을 벌었다. 그는 제지업에 손을 댔다. 영덕 일대는 종이 원료가 되는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일본인 경찰서장에게 그의 소문을 들은 일본인 관리들이 그를 집중적으로 도왔다. 그의 제지업은 순풍에 돛을 단 듯 번창했고 마침내 그는 도계에 있는 금광까지 개발해 부자가 됐다.
만주에 이은 일본의 중국침략으로 일본과 조선은 경제 번영을 이루고 있었다. 경성의 미스코시백화점, 조지야백화점, 미나카이백화점에는 조선인 손님들로 들끓고 있었다.
외국영화가 수입되어 상영되고 있었다. 게리쿠퍼 주연의 <모로코>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영화관 ‘황금좌’에서 이광수의 소설 <무정>이 영화로 상영되고 있었다. 박기채 감독은 당대의 주연급 여배우인 문예봉과 한은진을 기용했다. 신문소설을 읽었던 팬들이 밀물처럼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흥행은 대성공이었다. 경성은 근대적 도시로 탈바꿈했다. 경제 성장에 취해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떠들어댔다.
1935년경 경성비행장에서는 신예 전투기 여섯대가 축하 비행을 하는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 본토의 해군 고위 장성들이 참석해 있었다. 조선기업인 문명기가 비행기를 헌납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그는 전국적인 명사가 되고 영덕지역 국방회의 의장이 됐다. 지게에 삼치를 지고 팔러 다니던 그 남자였다. 수완이 좋은 그는 영혼까지 일본인으로 변화되어 있었다. 집안에 일본의 개국신을 모시는 감실을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절을 했다. 옷이나 말은 물론이고 생활방식도 일본인이었다.
영혼마저 일본인으로 변한 또 다른 형태의 조선인도 있었다. 유명한 한국인 형사 얘기다. 그의 부모는 구멍가게를 하던 영세 서민이었다. 그는 소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경찰서 급사로 들어갔다. 그는 형사의 정보원으로 일하면서 공로를 세워 정식으로 일본 경찰이 됐다.
그는 세계 일등국가인 일본의 시민인 걸 자랑으로 느끼고 있었다. 일본제국의 단결을 방해하는 분리주의자들인 독립투사를 색출하는 자신의 임무를 신성하다고 생각했다. 독립투사라고 하는 어떤 인간도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경찰 안에서 그는 자백을 빨리 받아내는 명인으로 이름이 났다. 그는 조선의 양반 출신들에게 반항과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증오하는 양반출신 독립투사들을 골라 미행하고 뒤를 파헤쳤다. 잡아다가 두들겨 패고 매달아 물을 먹이면 그가 원하는 어떤 자백도 받아낼 수 있었다. 그가 만든 사건이 법원으로 가면 유죄가 선고되곤 했다. 그는 쾌감을 느꼈다.
그는 일본제국이 인정해주는 명형사였다. 그의 아내는 애국반장이었다. 고등여학교 출신인 그녀는 남편의 행동이 지극한 애국심과 충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믿고 남편을 존경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남편 앞에서 굴복하고 떠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러워 했다. 그녀는 원성을 살 만큼 방공훈련과 국방헌금 걷기에 앞장섰다. 그녀가 방공훈련에 나오라고 하면 여자들은 하던 빨래를 던지고라도 나가야 했고 국방헌금이나 국채를 구입하라고 하면 없는 주머니를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부부는 진정한 일본제국의 신민이었다. 그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시대의 한 광경이었다.
1920~1935 한반도의 풍경, 잘 구경했습니다
(감사)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