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누가 밀정 같은 친일파일까

두 동강 난 2024년 광복절. 왼쪽은 정부 주관, 오른쪽은 광복회 주관 행사 <이미지 MBN>

정부와 별도로 개최된 광복회의 기념식 광경을 봤다. 구한말 의병의 손자라는 분의 연설이 있었다. 울분에 찬 그의 말을 들어보면 아직도 이 사회에는 친일파가 많이 잔존해 있는 것 같다. 그 친일파가 대통령의 주변을 감싸고 있다고 했다. 청중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 타도라는 구호 소리도 들렸다. 누가 친일파일까 그 기준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자료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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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조선공산당 평남지구 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친일파에 대한 규정이 등장했다. 한일합방에 공헌한 매국노와 그 후예, 일제시대 관리로 임명된 자, 침략전쟁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협력한 자였다. 다만 관리의 경우 본의가 아닌 것이 증명된 경우는 예외로 했다. 그해 9월 고성과 양양에서 친일파에 대한 인민재판이 있었다. 당시 서울의 조선공산당 대표 박헌영은 친일파에 대한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조선민족이라고 하면 노동자, 농민, 소시민이다. 이런 근로 인민이 조선민족이다.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가지고 일본제국주의에 투항한 특권층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친일파요 조선민족은 아니다. 이들의 완전한 숙청이 없이는 조국의 민주 건설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친일파를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이에 대해 남한의 지도자였던 김구와 이승만의 입장은 달랐다. 임정의 김구 주석은 이런 의견을 표명했다.

“일제가 36년 동안 민족의 단결을 저해하기 위해 부식해 놓은 정신적 독소가 있다. 조선의 전체적인 통일 독립정권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냉정한 양심적 반성이 필요하다.”

친일파에 대한 이승만의 의견은 이랬다.

“악질적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처벌해야 한다. 일제하의 직위가 문제가 아니라 핵심은 해방후의 처신이고 현재의 자세다. 식민잔재의 청산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이승만과 김구의 입장은 악질 친일분자에 한정해서 처단하고 그 외에는 관용하고 포섭해서 국가건설에 참여시키자는 입장이었다.

그 60년 후 노무현 정권에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과 재산환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위원회가 설치됐다. 청산이 덜 된 친일파를 색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위원장의 역사관이 친일파 결정의 배경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위원장의 논문과 시론을 모아놓은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와 <20세기 우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서적을 읽어 보았다. 그 대충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한반도가 일제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것은 노농계급의 정치적 성장이 늦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우리가 했어야 할 최고의 과제는 민족해방운동이었다. 그 시절 의열단 계통의 공산주의자들이 설립한 혁명기지가 조선혁명학교였다. 혁명학교의 방침은 노동자계급의 프롤레타리아혁명이었다. 삼일운동 이후 민족운동세력이 좌우익으로 분리되는 바람에 민족해방운동을 수행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김구 주석이 민족해방운동전선에서 활동하면서 좌익세력과 통일전선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가 외세에 의해 해방됐다. 이승만과 국내 지주세력인 한민당은 단독선거로 분단국가를 만들어 정권을 쥐었다. 미국에 의한 남한 정권 수립 자체가 한반도 주민들의 혁명적 운동을 방해한 것이다. 이승만의 대한민국은 국내 지주세력과 친일관료를 바탕으로 성립된 정권이다. 구한말부터 친일 세력은 3단계로 확대되었다.

첫 단계는 한일합방 시 고급관료와 이씨왕조 왕족 중심으로 형성된 친일파고 두번째 단계는 삼일운동 이후 자산계급, 지식인, 종교인으로 확대된 친일파다. 그들의 친일 논리는 즉시 독립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참정권 및 자치권을 획득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 차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논리였다. 해방 후 그런 친일파가 정치세력으로 재생됐다. 현재의 분단 자체가 식민지배의 미청산 상태다. 박정희 같은 일본군 장교출신, 신현확 같은 일제 관료출신, 그리고 김연수 같은 지주와 자본가 출신을 청산하지 못한 결과다.’

초기 매국노 세대는 다 죽었다. 그들이 말하는 삼일운동 후 확산된 친일파 세대도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세상으로 건너갔다. 그들의 개별적인 주요 타켓인 박정희, 신현확, 김연수도 다 죽었다. 광복회에서 주장하는 아직도 남아있는 밀정 같은 친일파는 누구일까. 그 정확한 기준이나 이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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