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내게 빛을 주고 떠난 당신, 영원히 제곁에 계십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장] 오래 전에 죽으면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증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요즘 들어 오른쪽 눈이 영 신통치가 못하다. 작년에 일산병원 안과의 정밀진단 결과 이미 오른쪽 눈은 망막이 가기 시작했고 왼쪽 눈도 녹내장이 와 서서히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두 눈은 양쪽 다 회복은 안 되고 다만 진행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면 사후 시신을 기증해도 쓸모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마음이 불편하다. 필자의 병은 30여년 앓아온 당뇨병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장기가 성한 곳이 거의 없을 것은 당연하다. 시신기증 약속은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엄마 등 세 사람 살기고 간 7살 소년
중국의 7살 소년 첸시앙은 2012년부터 뇌종양을 앓고 있었다. 한번 수술을 받아 호전되는 듯했지만 6개월 후 재발했고 그 땐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 안타까운 건 첸시앙의 엄마 저우루 역시 환자였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첸시앙이 아프기 전인 2011년,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만성콩팥증’(요독증) 판정을 받았다.

엄마가 병마와 싸우는 동안 첸시앙의 상태 또한 점점 심각해져 눈도 멀게 되었고, 온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첸시앙의 죽음을 직감했고, 첸시앙의 콩팥이 엄마와 일치한다는 것을 떠올렸다고 한다. 한 사람이라도 살려야겠단 생각에 아들의 신장을 이식받으라는 권유를 했지만, 엄마는 이를 강력하게 거부했다. 첸시앙의 친할머니까지 엄마를 설득하고 나섰지만, 그녀는 끝까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첸시앙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첸시앙은 “엄마가 꼭 살았으면 좋겠어!” “난 엄마를 구하고 싶어!”라고 말하며, 엄마를 간절히 설득했다. 엄마는 결국 신장을 이식받기로 했다. 어린 아들로 인해 새 삶을 가질 수 있게 된 엄마의 가슴 아픈 사연으로 수술 당시 의사들은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첸시앙의 신장을 거둘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첸시앙의 좌측 신장은 엄마에게, 우측 신장과 간은 다른 환자 두명에게 기증됐다. 7년의 삶을 살다간 첸시앙의 삶은 짧았지만, 어른도 하지 못할 고귀한 사랑을 실천하고 떠났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아름다운 희생’ 이야기가 나온다. 린다 버티쉬는 문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다 내주었다. 린다는 원래 뛰어난 교사였는데, 자기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언젠가 위대한 시와 그림을 창조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스물여덟 살 되던 해, 갑자기 심한 두통을 느꼈다.

의사는 그녀가 심각한 뇌종양에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수술을 해서 살아날 확률은 2%밖에 안 됐다. 당장 수술하는 것보다는 여섯 달 동안 기다려 보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린다는 자신 속에 위대한 예술적 재능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여섯 달 동안 그녀는 열정적으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쓴 모든 시는 한 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문학잡지에 게재되었다. 그녀의 그림은 한 작품만 제외하고 모두 유명한 화랑에서 전시되고 판매되었다. 6개월 뒤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날 밤 그녀는 다시 자신을 다 내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유언장에다 썼다. “내가 죽으면 모든 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기증하겠다.” 그런데 불행히도 수술은 실패했다.

그녀의 두 눈은 메릴랜드 베데스다에 있는 안구은행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다시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수혜자에게 기증되었다. 28세 청년이 암흑에서 빛을 찾았다. 청년은 너무도 고마움을 느껴 안구은행에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안구은행이 3만번이 넘는 안구기증을 주선한 뒤에 받은 두 번째 감사 편지였다고 한다. 청년은 기증자의 부모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하기를 원했다. 눈을 기증한 자녀를 두었으니 부모 역시 훌륭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청년은 생각했다. 버디쉬 가족의 이름과 주소를 전해 받은 청년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뉴욕주의 스태튼 아일랜드로 날아갔다. 예고도 없이 도착해 그 집의 벨을 눌렀습니다. 청년의 소개를 들은 버티쉬 부인은 두 팔을 벌려 청년을 포옹했다.

그녀는 말했다. “젊은이! 마땅한 곳이 없거든 우리 집에서 주말을 보내요. 내 남편도 그걸 원하니까.” 그래서 청년은 그 집에 머물기로 했다. 린다가 쓰던 방을 둘러보던 청년은 그녀가 수술을 받기 전에 플라톤을 읽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 역시 같은 무렵 점자책으로 플라톤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또 헤겔을 읽고 있었다. 그도 점자책으로 헤겔을 읽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버티쉬 부인이 청년에게 말했다. “어디선가 젊은이를 본적이 있는 것만 같아요. 그런데 그곳이 어딘지 생각이 안 나요.”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기억을 해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위층으로 달려가 린다가 그린 마지막 그림을 가져왔다. 그것은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의 초상화였다. 그림의 주인공은 린다의 눈을 기증받은 그 청년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린다의 어머니는 린다가 임종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쓴 시를 젊은이에게 읽어주었다. 다음의 시가 바로 그것이었다.

“밤을 여행하던 두 눈이/ 사랑에 빠졌어라/ 서로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볼 수도 없이….”

필자가 죽어 눈을 제외한 장기들이 고통받는 이들에게 쓰임새가 있을까? 필자 역시 내 육신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아낌없이 장기를 제공하고 싶다. 미리 써놓은 내 글들 중에 아직 출간하지 못한 글들을 사후에라도 책으로 만들어 많은 분들에게 맑고 밝고 훈훈하게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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