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철강왕 카네기를 절망에서 건져낸 그림 한점
카네기는 이 그림을 일생동안 소중히 보관했고,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라는 말을 그의 생활신조로 삼았다. 맞다.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 사람을 자살이라는 구렁텅이로 내모는 상대적 박탈감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요즈음 전국 각지에서 외로운 죽음이 발견되고 있다. 경영난 때문에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한 40대 봉제공장 사장이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또 특별한 직업이 없으면서도 직장에 다니는 척했던 30대 남성이 나뭇가지에 전깃줄을 걸고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왜 이들은 아까운 생명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것일까? 아마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죽음을 택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잘못된 행동이다. 고인을 욕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우리가 교훈을 얻고 그분들에게 죽을 힘이 있으면 어떻게든 달라져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2월 미국 오스틴에서 열린 마라톤대회에서 전 세계에 감동을 선사한 케냐 출신 마라토너 하이븐 응게티치(29)가 있었다. 37㎞ 지점까지 선두를 달리던 그녀가 갑자기 탈수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급하게 달려가 그녀를 살폈고, 더 이상의 경기진행은 불가라는 판단 하에 휠체어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휠체어가 아닌 무릎으로 남은 거리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포기 대신 완주를 선택한 것이다.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휠체어를 다시 권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의료진의 동행 하에 그녀는 ‘무릎 마라톤’을 시작했고 관중들은 뜨거운 환호성과 박수로 응원했다.
그리고 그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해 완주를 해냈다. 완주 기록은 3시간 04분 02초, 불과 3초 차이로 3위에 머물렀지만 관중들은 그녀에게 1위 못지않은 축하와 환호를 보냈다.
성공은 수백, 수천, 수만의 실패로 만들어지고 때론 1등보다 더 값진 꼴찌도 존재하는 법이다. 오늘의 실패로 내일의 성공과 가까워지고, 의로운 꼴찌가 박수를 받는 반전(反轉)이 있는 세상!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포기하지 않아야만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특권이다.
미국의 유명한 철강왕 ‘카네기’의 사무실 한 벽에는 커다란 그림 하나가 그의 일생동안 걸려 있었다. 이 그림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거나 골동품적인 가치가 있는 그림은 아니었다. 그림 내용은 커다란 나룻배 하나와 배를 젓는 노가 썰물 때에 밀려와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것으로, 무척 절망스럽고 처절하게까지 보이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는 글귀가 씌어 있었다. 누군가가 카네기에게, “왜 이 그림을 그렇게 사랑하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청년시절 세일즈맨으로 이집 저집 방문하면서 물건을 팔았는데, 어느 노인 댁에서 이 그림을 보았다는데 퍽 인상적이었소. 특히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는 글귀는 오랫동안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소. 그래서 28세 되던 해에 기어코 그 노인을 찾아가 용기를 내어 청을 했다오.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이 그림을 저에게 줄 수 없겠느냐’고. 내 청을 들어 주셨다오.”
카네기는 이 그림을 일생동안 소중히 보관했고,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라는 말을 그의 생활신조로 삼았다. 맞다.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 사람을 자살이라는 구렁텅이로 내모는 상대적 박탈감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절망에 빠진 분들이 있다면 다음의 6가지 방법을 기억하고 실천해보면 어떨까?
첫째,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 돕는 존재다. 즉 다른 사람들이 힘들 때 내가 도와주고, 반대로 내가 힘들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도움받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다. 도움받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기거나 도움을 요청했다 거절당할까 봐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체면이 깎이고 거절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추구하는 사람만이 답을 찾을 수 있다.
둘째,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것이다.
그동안 쌓인 우울, 불안, 두려움, 좌절, 절망, 상실,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대화를 통해 털어놓는 것이다. 당연히 대화상대가 있어야 한다. 가족이 가장 좋고 여의치 않으면 친구나 멘토를 찾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응어리가 상당 부분 풀어질 뿐더러 바로 그 순간 자살의 위험도는 절반 이상 줄어든다.
셋째, 누구에게나 고민과 괴로움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만 괴롭고 힘들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포함한 세상 사람은 모두 크고 작은 고민을 갖고 있고, 나아가 심리적 고통을 겪었거나 겪는 중이거나 겪을 것이다. 고민과 괴로움은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편적 경험이다.
넷째,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고통은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인생은 돌고 돈다. 지금 극도의 절망상태라 할지라도 목숨이 붙어 있어야 고통의 중단과 인생의 반전을 경험할 수 있다. 지금 무척 힘이 든다 해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언젠가는 좋아질 거야!’ ‘10년 후 내 삶은 행복할 거야!’ 등을 틈만 나면 크게 외친다.
다섯째, 남과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말 자체가 비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다. 다 내가 지은대로 받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인과응보라고 한다.
지금 나의 고통은 전생으로부터 내가 지어온 업보다. 이 업을 다 받는 날 나의 고통과 불행도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업장(業障)은 달게 받고 원망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삶의 태도다.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