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AIIB·사드배치 TV토론을 보다 ‘이청득심’이 떠오르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한국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하나는 미국의 고고도미사일(사드) 배치문제이며 또 하나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압력이다. 두 가지 문제를 놓고 어느 방송사 토론을 지켜봤다. 서로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바람에 결론을 보지 못하고 끝이 나 가슴만 답답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얘기가 꼭 이런 것 같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이청득심’(以聽得心)이다. “경청하면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경청은 “귀를 기울여 주의 깊게 듣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청득심’이란 귀를 기우리면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다는 말이다.
귀를 기우리다보면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들린다. 최근 우리사회가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으면 극한투쟁을 벌인다. 원인이 보수와 진보, 극우와 극좌 또는 종북몰이 등에서 나오는 것으로 아쉬움이 많다.
‘들을 청(聽)’이라는 한자를 파자(破字) 해보면 귀 이(耳), 임금 왕(王), 열 십(十), 눈 목(目), 한 일(一), 마음 심(心)으로 되어있다. 그 의미는 귀를 왕처럼 크게 하고, 열 개의 눈으로 바라보듯 상대에 집중해서, 상대와 한 마음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듣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갈밭에 수레 구르듯 요란하기만 한 사람이 잘 들을 수는 없다. 듣는다는 것은 어쩌면 인격적 완성의 조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는 말도 있다.
말 많이 하기보다는 잘 듣기 위한 자세를 배워야 한다. 이청득심! 단지 듣는 것만으로 상대방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데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 바람이 잠들어야 호수도 고요해지는 법과 같은 이치다.
갈등지수는 높고 행복지수가 낮은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 상대의 말을 경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청은 상대방과 한 마음이 돼 온몸으로 공감하며 듣는 일이다. 상대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귀를 기울이면 타인으로부터 공격받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경청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인간관계의 신뢰를 형성하고 민심을 모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성공한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겨한다는 점이다. <묵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임금에게는 반드시 뜻을 거슬러 바른 말하는 신하가 있어야 하고, 윗사람에게는 꼭 직언을 하는 부하를 두어야 한다.”(君必有弗弗之臣 上必有 ?? 之下)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소통을 외면하고 자기 의견만 고집하여 나라나 사회, 그리고 조직을 위태롭게 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경청을 잘하기 위한 5가지 행동지침이 있다.
첫째, 공감을 준비하는 것이다. 대화를 시작할 때 먼저 나의 마음 속에 있는 판단과 선입견, 충고하고 싶은 생각들을 모두 다 비워내고 그냥 들어주는 것이다.
둘째,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잘 집중하여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인정하는 거다. 상대를 완전한 인격체로 인정해야 진정한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셋째, 말하기를 절제하는 것이다. 누구나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앞서기 때문이다.
넷째, 겸손하게 듣는 것이다. 겸손하면 들을 수 있고, 교만하면 들을 수 없다. 경청의 대가는 상대의 감정에 겸손하게 공감하며 듣는다.
다섯째, 온몸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도, 입으로도, 손으로도 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계속 표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