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중국 주도 AIIB 참여하는 ‘영리한 영국’의 속셈은?
중국은 신형강대국이다. 그러나 중국이 21세기 세계 질서에 세련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중국이 이를 절실히 깨닫기까지 함께 길들여나가야 한다. 영국이 참여한다고 하자 당장 호주가 참여한다고 한다.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일본이 영국을 중심으로 결속할 것이 눈에 보인다. 사자가 없는 곳에 늑대가 왕 노릇을 하는 것이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영국이 AIIB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미국 대신 들어가서 중국을 견제하려고 하는군”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이를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하나 “이것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 이스라엘의 미국과의 연대는 한국, 일본과 미국과의 동맹과 견줄 것이 아니다. 미국은 영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만든 나라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주도하는 유태인들의 조국이다. 따라서 미국에 있어 영국과 이스라엘은 한국과 같은 ‘피를 나눈’ 관계가 아니라 피를 ‘같이 하는’ 형제인 것이다. 당연히 캐나다, 호주도 이에 준한다.
‘English speaking Peoples’의 이러한 결속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모든 일에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레이건은 1983년 공산당이 집권한 그레나다를 침공하였다. 그레나다는 커먼 웰스의 일원으로서, 형식적으로 국가원수는 엘리자베스 여왕이었다. 레이건은 사전에 이를 대처에 알리지 않았다. 대처는 이를 아침 6시 BBC 뉴스를 듣고 알았다고 한다. 대처는 격노했으나, 레이건은 이를 독특한 레이건-대처 간의 chemistry로 달랬다.
2차 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기까지 루즈벨트는 상당한 시간을 기다렸다. WASP의 일원으로서 심정적으로는 한시라도 빨리 영국을 구원하러 달려가고 싶지만 ‘유럽의 일에 우리가 왜 끼어드는가?’라는 미국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노련한 정치가인 루즈벨트는 기다렸다. 이는 마치 미국민을 일거에 분기시킨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기다린 것과 같다. 그래서 후세 사가들은 당시 군부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경계소홀을 루즈벨트의 대 음모론(grand conspiracy theory)으로 풀기도 한다. 미국이 참전하기까지 처칠과 루즈벨트 간에도 ‘밀고 당기기’가 있었다. ‘Give and Take’도 있었다. 그 한 예로, 미국이 구축함 50척을 원조하는 대가로 영국은 대서양의 버뮤다 섬을 영도했던 것이다.
오늘날 국제세력정치(power politics)에서 영국의 영향력은 간단히 보아서는 안 된다. 아직도 커먼웰스에는 캐나다, 호주, 인도 등 4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간다”고 하는 말이 실감난다. 동시에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프랑스, 독일과 함께 EU의 지도국이다. 영국은 EU에서 유럽과 미국의 중간자로서 독특한 역할을 한다.
영국은 AIIB에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려는 것 같다. 중국도 영국의 비중과 역할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영국이 들어오면 호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가 주위에 결속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과 일본이 여기에 합류하면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물론 현재 중국의 지분은 압도적이다. 미국은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를 내세워 한국이 여기에 참여하지 말 것을 강권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에서의 미국의 지분이 압도적이라고 하여 미국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지는 않는다. 중국이 세계의 주도국으로 오르기 위해서 어떤 스탠스를 보일 것인가는 앞으로 하기에 달렸다.
중국은 신형강대국이다. 그러나 중국이 21세기 세계 질서에 세련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중국이 이를 절실히 깨닫기까지 함께 길들여나가야 한다. 영국이 참여한다고 하자 당장 호주가 참여한다고 한다.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일본이 영국을 중심으로 결속할 것이 눈에 보인다. 사자가 없는 곳에 늑대가 왕 노릇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