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메르켈 ‘일본 과거청산’ 발언 진짜 배경은?

두 여성-메르켈과 셔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메르켈 독일 수상이 일본을 방문해서 마음먹고 쓴소리를 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사 연설, 일왕의 예방, 민주당 대표와의 대화 등을 통해서 메르켈은 아베정부를 자극할만한 이슈들에 대해 노련하게 할 말을 다했다고 독일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다. 오카다 민주당 대표가 “아픔을 준 쪽은 빨리 잊고 싶으나, 당한 쪽은 쉽게 잊지 못한다”는 발언도 하였지만, 메르켈은 “일본이 ‘성노예’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하며, 과거청산이 화해의 전제”라고 지적하면서 “화해의 주체는 언제나 두 당사자”라고 강조했다.

일본 외상은 메르켈 발언에 대해 “일본과 독일은 전쟁 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나라가 이웃인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적당치 않다”고 했다. 외상이 이런 수준에서 반응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일본이다. 충정어린 독일수상의 충고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가 있는가? 그냥 “고언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정도면 그만이다. 외상이라면 이만한 분별력은 있어야 한다. 독일언론들은 아사히신문을 연설 장소로 선택한 것을 “하나의 분명한 입장 표명”으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NHK가 메르켈 수상이 연설한 장소를 그저 ‘한 신문사’라고 얼버무렸다”고 지적하면서, “바로 이런 태도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학습능력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꼬집었다.

독일수상이 일본에 와서 고언을 하는 데는 각별한 이유가 있다. 같은 2차대전의 패전국으로서 독일은 일본에 대해 그럴만한 연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메르켈 수상은 특히 동독 출신이다. 공산체제를 경험한 메르켈은 ‘비정상이 사회의 흐름을 주도할 때’ 생기는 비극에 대해 생생한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치의 집권과 유대인 학살을 초래하고 독일을 패망으로 몰아넣은, 역사의 오류를 막지 못한 데 대한 독일인들의 자성과 회한은 천추에 맺혀있다.

메르켈은 역사의 뼈저린 가르침을 한때의 동맹국으로서 같이 나누고자 한 것이다.

메르켈은 오늘의 대처라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대처는 메르켈과 달리 일본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가졌다. 대처 수상이 영국을 방문하였을 때 일본의 대기업 관리자들을 높게 평가하였는데 이는 경영관리 위주의 영국에 비하여 강점이 많다고 본 것이다. 대처가 쓰쿠바 과학도시를 방문하였을 때, 로봇과 악수를 하는데 손이 마디마디 구부러지고 사람 손과 같은 따스한 감촉을 주는 것에 놀랐다고 술회하였다. 일본에 친화적인 영국과는 다르게, 메르켈은 아픈 경험을 같이 가지고 있는 나라로서 고언을 한 것이다.

최근 셔먼 차관보의 독설이 미국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한 보수논객은 “자기 나라를 강점한 것을 기념하려는 나라에 굽신거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면서 “쓸데없이 동맹국을 비난한 것은 잘못이며, 값싼 박수를 받으려는 것은 셔먼”이라고 일갈했다. 분명 셔먼의 발언은 잘못된 것이지만, 이것이 미국에 불고 있는 한국에 대한 서운함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소홀함이 있어서도 안 된다. 한국이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inconceivable, unthinkable) 일인 것이다.

역사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하나도 놓치지 말고 의의와 파장을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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