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경제토크] 중소재벌이 사기 당해 망하는 코스

사기는 개인간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금융사건 배후에 흔히 사기수법이 도사리고 있다. 금융사기 가운데 가장 빈도가 높은 수법이 텀 스트럭처(Term Structure) 사기다. 이게 무엇인지, 그리고 예방법이 뭔지 살펴보자.

많은 경우 단기 금융상품 이자율이 장기 금융상품 이자율보다 낮다. 그래서 단기로 돈을 꿔서 장기로 빌려주면 얼마 동안은 그 차액을 챙길 수 있다. 주주나 오너에게 뭔가 투자를 잘해서 이익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예전에 한국 종금사들이 국제금융이다 뭐다 하면서 홍콩에 가서 단기로 돈을 꿔서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고위험 장기채권에 투자를 하곤 했다. (당시 국제금융 한다면서 영어 써가면서 깝치던 젊은 친구들 요새 뭐하는지 모르겠다. 그 때 보니 욕심이 그 정도인지, 아니면 경제규모가 그 이상이면 크게 발각나는 정도였는지 몰라도 대부분 1000만 달러쯤 챙기고 튀는 수준이었다.)

몇 년 전 금융위기를 몰고 온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뒤에도 이것이 있다. 싸게 돈을 빌려서 서브프라임 대출자에게 왕창 꿔준다. 나중에 망하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일단 차액을 먹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한때 한국에서 유행하던 엔캐리도 비슷하다. 일본돈은 이자가 싸니 그걸로 빌려서 이자 비싼 곳에 놓고 차액을 먹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얼마 안 가 환율변동 때문에 박살났지만.

사실 금융이란 게 아비트라지(arbitrage, 위험 없이 차액만 먹기)가 기본 콘셉트이다. 아비트라지가 발생하느냐 안 하느냐를 전제로 삼아 모든 이론이 시작된다. 물론 효율적인 시장에선 그런 기회가 없다. 텀 스트럭처 사기를 개념적으로 정리하면 ‘사실은 발생하고 있지 않은 아비트라지 기회가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사기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거울이 필요하다. 거울을 한번 보자. 그 속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정말 멋있는가? 그렇지 않다. 별로 멋있지도 않은 나에게 왜 이렇게 위험도 없는 알토란같은 기회가 올까. 이렇게 좋은 기회라면 왜 자기가 다 먹지 별로 멋있지도 않은 나에게 위험도 없고 고수익 차액만 먹을 기회를 나눠 줄까. 당연히 뭔가 속임수가 있다. 기회가 아니라 트랩인 것이다. 가끔 거울을 들여다 보면 속임수를 피할 수 있다. 그런데 거울을 보니 정말 멋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왕왕 있기는 하다.

리스크 시프팅(Risk Shifting)이라는 수법도 자주 사용된다. 도박을 하는데 잃어봤자 손해는 제한돼 있고 따면 왕창 따는 그런 도박이 있다면 크게 거는 것이 당연히 유리하다. 도박판에서 그런 짓 했다가는 다리몽둥이 부러진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그런 수법을 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칭찬받는 경우가 많다. 말을 약간 바꿔서 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 십 년간 한국에서 사라진 중소재벌 중 상당수가 이 사기에 걸렸다고 보면 된다. 어느 날 오너가 우리 그룹도 미래를 위해 뭔가 새로운 차원의 일을 벌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서 부회장 정도 되는 사람을 한 사람 모셔온다. 좋은 학교 나오고, 경력 좋고, 집안 좋고, 말발 세고, 리더십도 있다. 이 사람이 일을 크게 벌린다. 미래성장동력 산업들이다. 다 대박 날 것 같다. 그리고 꼭 자기가 옵션도 받는다.

그런데 얼마 지나고 가만히 보니 이 사람이 일을 벌려도 너무 많이 벌린다. 그래서 좀 제동을 건다. 그러면 미래비전이 없다는 비난이 나온다. 젊은 임직원들 가운데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오너 아들들 중 여기에 동조하는 녀석도 있다. 그래서 에라, 나야 은퇴하지 뭐…, 이러면서 오너가 손을 뗀다. 2~3년 지나 그동안 투자한 것은 모두 실패하고 원래 알토란같은 기업들도 모두 빚투성이 만신창이가 돼있다. 정말 말 그대로 공수래 공수거가 된다.

그 부회장이 일을 막 벌일 때 과연 미래비전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위에서 말한 리스크 시프팅 수법일까? 나는 단연코 후자라고 본다. 신규사업이 크게 터져나가면 옵션이 있기 때문에 왕창 번다. 터지지 않으면 기껏 잃은 것이라고는 잘려서 월급 못 받는 것이다. 사실 일을 왕창 벌이면 그 일의 내부 곳곳 정보를 그 사람만 알기 때문에 자르기도 어렵다. 일이 실패할 경우 누군가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자를 수 없다.

즉 부회장 입장에서는 왕창 복잡하고 거창한 일을 벌여야 직장도 유지되고, 터져나가면 자기는 크게 벌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비전이니, 리더십이라고 칭찬해준다. 거기 반대하는 사람은 구닥다리로 욕을 먹는다. 꿩먹고 알먹고 고기먹고 꼬리는 눈씻고 둥우리는 불때고 나무는 도랑치고 도랑치면 가재잡고…. 이런 좋은 도박이 어디 있을까. 내가 보기에 지난 10여년 동안 여기 넘어간 중소 재벌그룹들이 개인적으로 잘 아는 곳만 서너 곳 된다.

이 리스크 시프팅의 응용이 대마불사 수법이다. 일을 너무 크게 벌여 여러 사람이 다치게 만들어 놓으면 오히려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대강 넘어가거나 누군가 나서서 책임져주게 된다. 한국 재벌들이 이 대마불사 수법을 자주 사용했다. 금융위기 때는 개인들도 이 수법을 많이 써먹었다. 그런데 대마불사 수법도 잘 못 쓰면 횡사하는 수가 있다.

오래 전 일이다. 현대그룹이 ‘현대가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 그래서 안전하다’고 으쓱거린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청와대에서 젊은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연히 분개했다. 그래서 직원회의 때 손을 턱 들었다. “현대그룹이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제가 그 생각을 48시간 안에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경제에 영향도 절대로 없게 할 자신 있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내 말에 귀를 솔깃했다.

“김우중씨 불러다가 필요한 돈 대줄테니, 현대그룹 전체를 인수할 계획을 짜오라고 하면, 김우중씨 불러서 청와대 들어오는 데 5시간, 계획 짜는 데 12시간, 타자 치는 데 4시간 (당시엔 타자기를 썼었다), 다시 들어오는 데 5시간, 현대그룹에 그 계획서 보여주는 데 5시간, 싹싹 빌러 오는 데 5시간, 문 밖에 세워놓고 만나주지 않는 데 몇 시간…. 그러면 딱 48시간이면 되겠는데요.”

대마불사를 논하시는 분들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항상 겸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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