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경제토크] 야당은 왜 계속 패배할까
나는 한국의 선거를 관찰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학생시절부터 교수시절 나의 연구 관심이 “정보가 금융시장에 어떻게 흘러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였기에 정치정보가 어떻게 흘러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는 너무 재미있었다. 요사이는 더 재미난 것이, 개인적으로 아는 친구들이 주연급으로 활약하니 그 굿판이 재미나다.
그런데, 금융정보와 정치정보는 원천적으로 다른 몇가지 측면이 있다.
1)정치는 2~3개의 답을 놓고 그 답들이 서로 게임이론처럼 겨룬다. 그러나 금융정보는 그렇지 않다. 바둑판 예를 들면, 정치는 고수들이 그 수를 겨루고 상대의 수를 예측하고 상대는 나의 예측을 예측하고, 나는 상대의 예측의 예측의 예측을 예측하면서 마지막에 누가 더 많이 집을 차지하는가를 겨루는 것이라면, 금융정보는 알까기 같은 면이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바둑판 위에 누구 바둑알이 몇 그램 더 남아 있나로 겨루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장사꾼보다 머리가 더 좋다고 봐도 된다. 당연히 그 사람들의 다차원적인 게임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은 장사꾼들이 기껏 2차원적인 게임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보다 어렵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된다.
2)금융정보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1인1표가 아니다. 워런버핏의 한표는 수십억 가난한 사람의 몰표보다 더 강하다. 그런데, 정치정보는 1인1표로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그 집계방법이 전혀 달라야 한다. 금융정보는 가격변동을 보면 많은 것을 추측할 수가 있는데, 정치정보에 관해서는 머릿수를 세야 한다. 내가 보기엔, 금융에서는 가격을 잘 예측하면 크게 성공한다. 반면 정치에서는 머릿수를 잘 세면 성공할 것 같다.
그래서 금융쪽에서는 자기가 큰 부자라는 사람이 접근해오고, 선거때 보면 내가 몇 표를 모아올 수 있다는 사람들이 선거본부에 접근해온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가를 잘 분별하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면에서는 다단계사업은 금융과 정치의 중간 정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교회는 사실은 머릿수로만 세어야 하는데, 목사님들이 자꾸 가격을 보시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한국의 선거를 들여다보면, 여당은 ‘분석과 통계를 가지고 상당히 공학적으로 접근하다가 막판 1~2일 남겨놓고는 감정에 읍소하는’ 수순을 두어서 늘 이긴다. 이에 비해, 야당은 그저 ‘나 대신 누군가가 엄청 비분강개해 주시고, 누군가가 재산 커리어 심지어는 목숨을 걸고 거리에서 싸워주시고, 그 결과, 내가 여당이 아니니 그 비분강개가 찍어줄 것이 나밖에 더 있겠나? 나 안 찍어주면 정의를 모르는 놈들이지’ 식으로 접근한다. 즉 4.19 후 민주당 집권 메카니즘과 그 프레임을 계속 사용하는 것 같다.
당연히 투표율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 대부분 선거에 야당은 “투표하자, 내 한표가…” 하면서 선거운동을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비분강개에 의지하기 때문에 선거에 지고 나면 “더러운 세상, 정의롭지 못한 세상!”이란 감정이 든다. 대신 여당은 선거를 한번 치루고 나면 “음, 좋은 데이터가 또 모였군” 하며 다음 선거를 대비한다. 다음 선거에는 더욱 정교한 머릿수 세기를 바탕으로 더욱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야당은 계속해서 누군가 더욱 미치도록 비분강개할 무슨 사건이 터져주기를 기대한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길에서 박보장기를 펼쳐놓은 사기도박, 사기장기의 고수와 지나가는 막걸리 드신 행인1의 한판을 보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인제라는 大민주투사가 여당 표를 수백만표 갈라주어 야당이 집권해본 것이지 그 대민주투사가 안 계셨으면 김대중씨고 노무현씨고 어림 반푼 어치도 없었던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옆에서 박보장기 펼쳐놓은 다른 고수가 위의 행인1에게 답을 알려줘 버린 것 같은, 그래서 원래 고수가 무지하게 화가 나 버린 그런 상황이었다. 즉 투표를 통한 자력집권이 어려운 것이다. 거기다 언론지평은 전혀 공평하지 않지, 국정원 아자씨(아가씨)들도 있고 말이다.
머릿수를 정확하게 세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선거구민을 여러 성분과 지역별로 나누고, 소그룹별 투표율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 이거 잘 하면 정치보스는 쉽게 될 것 같은데 어디 그게 쉬운가?
문제는 그것을 잘 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 텐데, 거의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비용대비 수입이 시원찮다. 그게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유다. 그 일을 해도 비용대비 수입이 괜찮은 개인과 집단만 그 일을 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
야당이 계속 패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대의 틀린 이야기를 틀렸다고 지적하는데 너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다. 선거는 상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틀리건 맞건) 내편이 투표소에 더 많이 가거나 개표를 조작하거나가 아니겠는가?
상대가 엄청 틀린 소리를 한다, 그래서 핏대를 올린다? 어릴 적에 싸우면 먼저 우는 놈이 지는 거다. 더 나이 들어서는 먼저 코피 터지는 놈이 지는 거다. 더 나이 들어서는 먼저 지갑 꺼내는 놈이 지는 거다. 선거는 먼저 핏대 올리는 놈이 지는 거 아닌가 싶다.
그러니 난 정치인들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