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아침밥'(breakfast)의 유래를 아시나요?

부존재

로마인은 하루 한 끼 먹었다. 정오경이나 되어서야 비로소 그 날의 끼니를 때웠다. 하루 한 번이 건강에 좋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은 탐닉으로 봤다.

중세(Middle Ages). 수도원과 같은 금욕생활이 지배했다. 먹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침 미사 전에는 먹지 못했다. 하루의 중간에 한 번 먹었다.

breakfast의 등장

이 무렵 영어 단어에 breakfast가 생겼다. fast(斷食-節食)을 break(斷絶)! 즉, “밤새 못 먹은 걸 드디어 먹는다.”(break the night’s fast) 허기 채우기다. 고기도 보급됐다. 돼지고기로 만든 포크와 베이컨을 달걀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full English breakfast’의 전신이 탄생했다. 그러나 아침에 먹지는 않았다.

17세기에 들어와서야 모든 계층이 아침밥(breakfast)을 먹게 됐다. 영국에서는 1660년 찰스 2세의 왕정복고가 분수령이었다. 부유층 식탁에 변화도 왔다. 커피와 차가 나왔다. 달걀을 버터와 우유를 섞어 지진 scrambled eggs도 등장했다. 1740년대 후반에는 부잣집에 조찬룸(breakfast room) 또는 모닝룸(morning room)이 출현했다. 19세기에는 귀족의 아침식사가 낭비와 퇴폐로 치달았다. 24 접시가 아침마다 나왔다.

산업혁명이 초래한 아침밥

1760년부터 1840년까지의 산업혁명 기간, 공장 노동자의 근무시간(Working Hours)이 정해졌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했다. 규칙이었다. 새벽밥 먹고 나갔다. 사장이나 공장장도 출근 전에 아침을 먹었다. 모든 계층의 사람이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일터로 향했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노동을 감내하기 힘들었다.

캘로그 형제가 이끈 미국식 아침 혁명

미국인 대부분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침식단이 바뀌었다. 아침밥(breakfast) 대신 켈로그(Kellogg) 형제가 개발한 시리얼 콘플레이크(cornflake)를 먹기 시작했다. 형 하비 켈로그는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위생병원 원장이었다. 동생 윌 케이스 켈로그와 함께 채식 식단용 음식을 개발 중이었다. 어느 날 형제는 조리하려고 준비한 밀을 놔둔 채 외출했다. 돌아와서 그 밀이 다 말라버렸음을 알았다. 버리기는 아까웠다. 롤러로 밀어 얇게 폈다. 불에 구어 마시멜로와 우유와 함께 병원식당에서 제공했다. 평이 좋았다. 발명특허로 등록. 회사 만들어 판매에 들어갔다. 미국인의 습성에 딱 맞는 식품이었다. 조리를 한다는 행위가 필요 없었다. 접시에 붓고 우유 부어서 휘저으며 훌훌 마시듯 먹으면 식사 끝! 산업사회형 식사다.

아침밥 먹기 운동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하루 세끼 중 아침이 제일 중요하다는 프로모션이 이루어졌다. 각국의 정부 주도로 아침밥 먹기 운동이 벌어졌다. 부국강병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국민이 밥을 잘 먹어야 국민의 체력이 향상된다. 그리고 징집된 건강한 국민이 강건한 군대를 만든다는 생각이다. 애국은 아침밥에서 나온다고 외쳤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자 아침밥 먹기 운동을 전개할 경황이 없었다. 아버지와 오빠는 전쟁터로 나갔다. 어머니와 누나는 군수품 공장에 일하러 갔다. 대피하고 피난 갔다. 2차 세계대전은 아침밥 먹는 습관을 무너뜨렸다.

1950년 이후 전기와 전자 분야의 기술의 발전과 발명은 눈부셨다. 식습관의 변화를 가속시켰다. 토스트 기계와 인스턴트 커피는 식탁에 둘러 앉아 먹는 breakfast를 추방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오순도순 모이는 기회와 좋은 분위기를 추방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