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폭력단상···조폭과 정치인
사람은 각기 자기영역을 지니고 산다. 이 안으로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면 불쾌감을 느낀다. 개인영역 침입이다. 방위본능이 작동을 개시한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능이다. 몸에 깊이 밴 습성. 좀체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이웃이나 교섭 상대자와 분규가 발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감정폭발 임계점에 이르면 충돌한다.
내 삶에 어떤 원칙과 가치관을 정립해서 이를 지켜나가려고도 한다. 역시 자기영역이다. 세상이 종종 이를 무너뜨리려 한다. 틈새 노려 쳐들어온다.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처음에는 대놓고 말 못한다. 못마땅해서 눈살 찌푸리는 행동이 감정분출의 시작이다. 이어 들으라는 듯 혼잣말한다. 그래도 계속되면 드디어 분노가 폭발한다.
사람은 의외로 참을성이 없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가려는 층 버튼만 누르면 된다. 알아서 닫히고 열린다. 그러나 마구 눌러댄다. 1초도 기다리지 않는다. 욱! 하는 동물의 전형이다. 세상살이는 접촉회피 불가능. 신경질로 대응하면 경찰서 신세진다. 사소한 일로 전과자 된다. 한세상 사는데 뭐 그리 까다로운가. 참으면 만사편안.
인내와 양보가 내 안심의 밑바탕이다. 헌데, 참지 못하고 그만 주먹을 휘두른다. 또는 욕설을 하거나 듣기 거북한 심한 말을 해버린다. 이게 다 폭력이다. 문제는 폭력은 원인 제공자를 가려 그를 처벌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누가 먼저 막말 했느냐, 누가 먼저 욕설 했느냐, 누가 먼저 주먹질 했느냐를 따진다.
아무리 내 주장이 옳다 하더라도, 아무리 내 생각이 정의라 하더라도, 상대편이 불의를 얘기하고, 상대편이 무뢰한이라 하더라도, 먼저 막말을, 욕설을, 주먹질을 한 쪽이 비난 받고 처벌 받는다. 폭력은 학습된다. 공격행동을 획득하게 된다. ‘여기서 그만’ 해야 한다고 느낄 때 혀와 손과 발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를 못해서 곤욕 치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주위에서 저런 더러운 성깔, 하면서 점차 기피하게 된다. 접촉을 피한다. 특히, 자존심 건드리는 막말폭력에 대하여는 격렬하게 반응한다. 참아야 전과자 되지 않는다. 신상이 깨끗해진다. 참아야 왕따 당하지 않는다. 인생이 편안해진다. 참아야 곁에서 전전긍긍 불안 속에 살지 않는다. 어렵다. 그래서 폭언과 폭행은 상습범이 대부분이다.
그런 욱! 하는 일상의 폭력이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두 부류가 있다. 생계의 도구로 이용하는 조직폭력배/범죄조직이 그 하나요, 투쟁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정치권이 그 하나다.
박근혜 정부 출범 한달 가까이 공전(空轉)하는 정치를 보면서, 주고받는 수작 속에 숨겨진 폭력을 본다. 발목잡기가 능사는 아닐 터인데…, 하면서 구태의연한 그 그들만의 리그를 주시한다.
뻔뻔스럽게도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정치폭력을 먹고 사는 그들이 가엾다. 하긴 그 맛에 정치하는 거라고 하더라만, 아이들이 보고 배우니 걱정이다. ‘그게 바로 정치깡패-불량배의 일종’이라고 가르쳐주기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