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파스칼, 데카르트, 그리고 카사노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열일곱에 원뿔 곡선에 관한 수학이론을 썼다. 이듬해 계산기를 발명해 명성이 자자했다. 최초의 디지털 기기였기 때문이었다.

본심은 그런 명예욕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돕기 위해서였다. 부친은 시 행정관으로 일했다. 전에는 세무법원 판사였다. 세금분쟁 심판에 골머리를 앓았다.

행정을 맡은 뒤에도 세금과 씨름했다. 공정하고 공평한 과세가 늘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도와드릴까 고민하다 궁하면 통한다 했는가. 효심이 기계의 고안으로 이어졌다.

사려가 깊다. 그래서 그런가. 사후에 출판된 <명상록>(Pensees)에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 가장 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라고 설파했다.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후배인 파스칼의 천재성을 시샘도 했다. 같은 공부를 해서인가 같은 맥락의 말을 남겼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다르게 살며 역사에 기록을 남긴 인물도 있다. 데카르트와 파스칼보다 한 세기 뒤에 태어났다. 유럽 각지를 방랑했다. 엽색행각을 벌였다. 카사노바다.

그 이름 들으면 이내 희대의 난봉꾼을 떠올린다. 실제로 그는 열여덟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마흔 권에 달하는 책을 저술했다.

인생유전의 단초는 스캔들. 이로 인해 신학교에서 쫓겨났다. 이후 이탈리아 출신 모험가 중 제1인자의 길을 걸었다. 죄수가 되기도 했다. 스파이 노릇도 했다.

그러면서도 당대 권력자와 만났다. 교황은 물론 프로이센 대왕과 러시아 여황제도 그를 곁에 두었었다. 계몽사상가 볼테르와 논전도 불사했다. 지식과 재능을 여성 유혹에도 이용했다.

자서전 안에 생애의 역사를 남겼다. 외도기록이 전부가 아니다. 18세기 문화와 풍속이 담겨 있다. 그 시대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카사노바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사상가는 생각한다고 했고 모험가는 느낀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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