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숨겨진 금의 역사···레닌, 공중변소 ‘금 도금’ 꿈꿔
석기시대 사람들은 냇가 자갈 속 반짝이는 작은 알갱이에 끌렸다. 무겁지만 보드라운 이 물질을 돌망치로 두들겨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다듬었다. 장신구다.
그들은 이 거친 세공품이 후세에 전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원한 생명력! 시간의 흐름에 영향 받지 않는다. 공기나 물과 같은 부식성 물질로 인하여 녹슬지 않는다. 몇 번을 녹인다 해서 질(質)이 변하지 않는다. 여간해서 파괴되지도 않는다.
전기전도체여서 전기회로에 필수 물질이다. 얇은 판으로 만들어 도금에 사용한다. 단 1g만으로도 가느다란 선 2000m를 만든다. 두께 0.1미크론의 금박이 된다. 우주유영 우주인과 우주선은 금줄로 연결됐었다. 방사선 차단을 위해서였다.
레닌은 공중변소를 금으로 도금하고픈 생각을 저버리지 못했다. 실천은 못했다.
그러나 금의 최고 용도는 우리 마음 속 부자느낌이다. 대규모 금산지는 다 발견됐다. 그런데도 금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부의 궁극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를 갖는 데에는 한 가지 장애가 있다. 골라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양질의 금광이라도 순금과 잡석의 비율은 1대30만이나 된다.
1869년 유사 이래 최대 순금 덩어리를 캐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두 명의 영국인이 Welcome Stranger라는 이름까지 붙여졌다. 5만 달러에 팔렸다. 길이 53cm-지름 25cm-무게 70kg! 광맥에서 발견된 최대 금덩어리도 1872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나왔다. 285kg의 홀터먼 금괴이며 여기서 금 85kg이 나왔다.
현존하는 최대 순금 세공품은 이집트 투탄카멘 왕이 들어 있던 관이다. 무게는 1100kg이다. 부자는 따로 있다.?1896년 미국 클론다이크 강가 보낸저. 자갈 속에서 금이 발견됐다. bonanza는 곧 ‘노다지’라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그 노다지도 주인은 따로 있었다. 조지 해리슨. 남아프리카 위트워터스랜드 분지에서 금의 흔적 찾아냈다. 돈이 다 떨어져 궁핍했던 그였다. 1886년 단돈 50달러에 팔았다. 세계에서 손가락 꼽는 금산지가 됐다.
몇 억만 달러가 남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렸다. 해리슨보다 뒤늦게 뛰어든 임마뉴엘 제이콥슨과 앨런 로버츠. 남아프리카 아덴트 농장에서 굴착을 개시했다. 1239m까지 팠다. 돈이 바닥나 손을 뗐다. 1950년 다른 탐광자가 일을 계속했다. 단지 120m를 더 파 내려갔을 따름인데 금광맥이 나왔다. 랜드 광산이다.
앨런 로버츠는 뼈저린 가난 속에서 죽었다. 장례식 치를 돈마저 없었다. 비용을 친구들이 대서야 겨우 묻혔다. 그런데 그의 굴착지에서 전 세계 금 생산량의 70% 이상이 나오고 있다. 금을 그간 얼마나 캤나?
바닷물에 100억t의 금이 있다. 비용이 너무 든다. 바닷물 1t에 금은 10mg 들어있다. 금 1g을 생산하려면 바닷물 100t을 걸러 내야 한다. 그러나 금에 대한 열정과 원망(願望)은 끝이 없다. 현대판 연금술사 물리학자들은 연금술 방법을 알고 있다.
좁쌀 한 알만한 금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몇 백 만 달러라 한다. 그래서 바닷물에서 금 찾아내는 기술의 탐구에 열 올리고 있다. 요원한 일이라 한다. 그보다는 침몰한 보물선 탐색이 비용과 시간 면에서 훨씬 낫다.
침몰한 해적선이나 군함 탐사는 일확천금 꿈 꾸는 중팔 선생을 비롯한 모험가의 몫이다. 채금은 6000년 역사를 자랑한다. Lydia in Turkey가 기록상 최초다. 이후 현재까지 17만1300t, 일설에는 15만5244t이 채굴됐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1492년 이후 15만8520t(일설로는 15만4947t), 그 이전에는 1만2780t(일설로는 297t)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 금. 당신이 지금 몸에 지니고 있는 그 금패물. 그 아름다운 장신구는 브리튼을 정복한 로마인이 켈트인 노예로 하여금 캐내게 한 금광석에서 나온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백제 장인의 솜씨로 어느 한때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태어나 佳人에게 바쳐진 그 언약의 표지. 그 반지가 세월 속을 지나 오늘 그대 손가락에서 다시 사랑의 약속으로 태어난 건지도 모른다.
금은 없어지지도 않는다. 질이나 색이 변하지도 않는다. 귀중품으로서의 가치나 자격을 잃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 곁에 있다. 마냥 탐욕만의 대상은 아니다. 옛 얘기 속 우화처럼 금덩이를 돌덩이로 보기야 하겠느냐만, 욕심이 지나치면 화가 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