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근의 마음산책] 사랑이야기⑥ “대리만족…왜 위로하지 않고 비난할까”

대~한민국. 짝짜~악짝 짝짝. 누가 시킨 사람도 없는데, 다들 붉은 티셔츠를 입고, 길바닥에 앉아서,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한 것이었을까요?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 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뭐가 달라지는 거죠? 대한민국 대표팀이 월드컵 4강에 오르게 되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나요? 우리 국민 모두가 훨씬 더 건강해지기라도 하는 건가요? 왜 그런 일들을 할까요?

국민들이 박찬호, 박세리에 쏟았던 감정은 확실히 애정입니다. 한류 열풍에 기뻐하고, 싸이 열풍에 즐거워하는 감정의 바닥에도 확실히 애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사랑은 지난주까지 이야기했던 공감과 애착만으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지요. 여기에는 대리만족 효과가 작용을 합니다. 대리만족 역시 사랑을 구성하는 뿌리 중의 하나라는 것이지요. 물론 공감이나 애착만큼, 또 다음에 이야기할 성욕만큼 중요한 구성요소는 아닙니다만, 때론 꽤 크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자식이나 제자에 대한 사랑은 대리만족 효과를 빼고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왜 인간은 대리만족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일까요? 개체의 이득만을 중요시하는 종과 집단의 이익을 함께 중요시하는 종은 어느 쪽이 더 번성하기 좋을까요? 당연히 후자겠죠? 그래서 오랜 진화를 거치며 모든 생물은 어느 정도는 집단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속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상상력이 강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집단의 번성을 돕는 기능도 인간의 특성에 맞춰 특별한 쪽으로 발달을 하게 됩니다. 내가 속한 집단의 누군가에게 벌어진 일을 내 자신의 일처럼 느낄 수 있게 진화를 한 것이지요. 이런 감정을 대리만족이라고 합니다.

대리만족 기능은 공감과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지만, 조금 다른 면도 있습니다. 공감은 유전적으로 거리가 좀 멀어도 작용을 합니다. 애완동물에게도 작용하는 것이 공감이지요. 그러나 대리만족 효과는 확실히 유전적으로 거리가 가까울수록 강하게 작용을 합니다. 기쁨, 슬픔, 고통, 배고픔, 만족 등등의 단순한 하나의 감정이 쉽게 전이되는 것이 공감입니다. 하지만 대리만족은 훨씬 복잡한 상황에 대해서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한 상상이 가능할 때 느껴지는 감정입니다. 유전적인 거리가 멀어지면 상상이 발동되는 것이 약해지지요. 당연히 대리만족 효과도 줄어들게 됩니다.

성공의 경우에는 공감과 대리만족은 비슷하게 작용을 합니다. 실패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주로 공감일 때는 실패한 상대방에 대해서 위로나 격려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리만족의 대상이 실패했을 때는 나 역시 좌절이나, 패배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 비난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들이 중요한 도전에서 실패했을 때 부모가 더 가슴이 아플까요? 아이가 더 가슴이 아플까요? 당연히 아이겠지요? 그런데도 위로보다 야단을 앞세우는 부모가 더 많습니다. 자신이 느낀 좌절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아이를 탓하는 것이지요. 아이가 다치고 들어오면 “아프겠구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먼저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조심하지 그랬니”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국가대표 팀이 중요한 경기를 졌다는 기사에는 감독의 전술이 멍청했다느니, 누구는 제발 좀 빼라느니 하는 댓글들이 도배를 합니다.

대리만족은 조심해야 하는 감정의 하나입니다. 대상에게는 미움이나 비난으로 바뀌기 쉬운 감정입니다. 나에게는 나의 주체성을 흔들리게 만들기 쉬운 감정입니다. 또 집단이기주의에 빠지거나, 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쉽게 만드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들을 다음 주에 좀 더 다뤄보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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