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醫 김명근의 마음산책] 성격 이야기⑤ “부모의 통제? 아이는 무책임해진다”

부모의 양육태도 기준 ‘통제, 거부, 방치, 공격, 온정’

요즘 제 클리닉에 오는 아동들의 기질-성격 검사를 하면서, 부모님의 자녀양육태도 검사를 같이 합니다. 자녀 양육태도에서 검사하는 것은 자녀에 대한 통제, 거부, 방치, 공격 그리고 자녀에게 얼마나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느냐의 다섯 가지입니다. 이중에 아이의 자율성 척도와 관련이 높은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일단 통제는 아이의 자율성이 떨어뜨릴 것이라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율성 척도를 구성하는 소척도들을 보면 ‘진짜 그래?’라는 생각이 들 만한 구석도 있거든요.

지난 칼럼에서 밝혔듯이 자율성은 ‘책임감’, ‘목적의식’, ‘유능감’, ‘자기 수용’, ‘자기 일치’ 등으로 이뤄집니다. 막상 소척도들을 보면 ‘통제가 꼭 나빠?’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중에서도 특히 책임감이나 목적의식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이를 철저히 통제하는 부모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자기 일은 자기가 확실히 하는 아이로 훈련시키기 위해서 통제를 하는 것이라고.

자기 일을 자기가 마무리하게 하는 것은 확실히 아이들의 책임감을 높여줍니다. 또 목적의식도 높여줍니다. 그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보면 부모 통제가 강한 아이들일수록 책임감도, 목적의식도 낮게 나오거든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제가 한 말 중에 트릭이 있습니다. 발견하셨나요? 이 칼럼을 꾸준히 읽어 오신 분이면 아실 것 같은데… 핵심은 ‘자기 일’입니다. 부모가 생각하는 ‘자기 일’이 아니라, 아이가 생각하는 ‘자기 일’이 자기 일이라는 것이지요.

인간이 일진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역할분담’

사람은 모듬살이의 본능이 있습니다. 몇 십만 년 전에는 사람은 지구 위에서 일진이 아니었지요. 빵셔틀 정도가 조금 넘는 수준? 몇 만년 전 정도가 되면 슬슬 일진에 등극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협동의 의해서지요. 코끼리나 사자하고도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떼로 몰려가 싸우는 방식을 개발한 덕분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수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나눠서 작전을 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렵만이 아니라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지구상의 일진으로 등극하게 만든 최고의 기술은 역할분담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무리에서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바로 우울, 자신감 상실, 불안 등을 불러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부, 특히 야단에 의한 공부가 책임감을 기르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내가 속한 집단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아이들은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칭찬이나 격려에 의한 공부는 그래도 좀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공부가 부모님을 웃게 만들고 기분 좋게 만든다는 것을 통해 조금은 자기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하니까요. 어쨌든 공부가 아이의 일이고, 나머지는 부모의 일이라는 방식의 가정 운영은 아이들에게 책임감, 목적의식을 길러주는 데는 아주 젬병인 양육방식이라는 것이지요. 아주 간단한 것 하다못해 현관의 신발을 정리하는 일이라든지, 식사 때 수저를 꺼내 식탁에 늘어놓는 일이라도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속집단에 대한 참여가 책임감 키워

며칠 전에 추석이 있었습니다. 제 어릴 때 추석의 기억은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던 일입니다. 만으로 다섯 살이면 송편 빚는 일에 참여를 합니다. 당연히 즐겁게 참여를 합니다. ‘넌 아직 어려서 못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년에는 꼭’이라며 벼르던 일이었으니까요. 어릴수록 정성껏 송편을 빚습니다. 나도 이제 송편을 빚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으니까요. “어우, 예쁘게 잘 만들었는데” 소리라도 한 번 듣게 되면 훨씬 더 신이 납니다. 책임감, 목적의식 전부 그럴 때 자라나는 것입니다.

통제는 자기 일도 남의 일로 느끼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통제로 책임감 기르기에 성공한 부모는 인류 역사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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