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醫 김명근의 마음산책] 공부가 즐거운 이유①

*김명근 한의사가 정신건강과 관련된 칼럼을 연재합니다. 첫 칼럼은 학습에 관한 문제로 시작합니다.

논어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하냐”라는 말로 번역이 됩니다. 학생들은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공부의 정의는 ‘합격으로 보상 받는 괴롭고 지겨운 과정’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즐거웠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즐겁지 아니하냐?”라며 당연한 듯이 말을 하니 받아들이기가 어렵겠지요. 게다가 그 說(열)이 그냥 기쁜 것이 아닙니다. 자전에는 ‘기꺼울 열’이라고 나오지요. 기쁨이 꽉 차서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평생 글자를 몰라서 동사무소를 가도, 은행을 가도 다른 사람에게 써 달라고 하면서 혹시 속이지나 않을까 불안해했던 할머니가, 자식에게 편지 하나 보낼 때도 다른 사람에게 써 달라고 해야 해서 남부끄러운 이야기는 차마 쓸 수 없었던 할머니가 노인 학교에서 드디어 글자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을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쓸 때 그 때 기분이 어떨까요? 그 정도라면 說이라는 글자를 써 줄만하지 않을까요?

핵심은 時習에 있습니다. 시습을 보통은 꾸준한 반복으로 이해합니다. ‘너희들이 배우는 재미를 모르는 것은 경지에 가지 못해서인 거야. 꾸준히 계속 하면 경지에 다다르고, 그 때가 되면 재미를 알게 되는 거야’ 이게 훈장님이 학동들을 다그치는 주 메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훈장님은 열의 경지를 아는 걸까요?

시는 때에 맞는 것이 시입니다. 곡식을 심어야 할 때 딱 때맞추어 내리는 비를 時雨(시우)라고 합니다. 시습이란 시와 때에 맞추는 것이지요.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것은 막무가내요, 막습입니다.

배움에 기쁨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이란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거나, 자신의 씨를 뿌릴 확률이 높아지는 일에 기쁨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식이 생존 가능성을 높여 주는 것이지요. 인간이라는 종은 발톱이 날카롭거나, 힘이 엄청나게 세거나, 속도가 남달리 뛰어나 살아남은 종이 아닙니다. 기억력과 사고력이 다른 생물종보다 좀 뛰어나서, 그를 무기로 삼아 살아남고, 심지어는 지구 위의 최강의 종을 넘보는 위치까지 도달한 것이지요. 지식의 습득은 생존가능성을 높여주는 아주 중요한 원천입니다.

즉 무언가를 새로 배웠다고 느낄 때, 우리의 의식이 아닌 저 아래에 숨어있는 무의식이, 내가 생존 가능성이 조금 높아졌음을 파악하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기쁨을 느끼는 신경 전달 물질을 뇌에 확 뿌리는 것이지요. 그 신경 물질에 대한 반응이 공부의 기쁨의 정체입니다. 그런 기쁨은 배운 것을 제대로 써 먹을 수 있을 때 두 배, 세 배로 올라갑니다. 위에서 말한 할머니가 자기 이름을 쓰는 것, 그것이 時習이고, 그 때 느끼는 감정이 說입니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아이는 그 즐거운 공부가 싫어지는 걸까요? 어디에 써 먹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을 공부하기 시작할 때 공부에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하지요. 아이들의 뇌 발달 단계 등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의 선행 학습이 공부를 재미없게 만드는 핵심이라는 것이지요.

오늘은 첫 인사를 겸한 내용인 만큼 운만 떼는 정도로 시작을 했습니다. 아이들의 두뇌 발달 단계와 학습에 관한 문제를 앞으로 몇 번 계속 다룰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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