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醫 김명근의 마음산책] 선거의 심리학④ “朴·文·安, 롤모델? 신분효과?”

자존심… 경쟁상대에게 느끼는 심리

노예를 해방시켜주면 대부분의 노예가 “와! 자유다”를 외치며 달려 나갔을까요? 역사의 기록을 보면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직장생활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자신의 상사가 자기보다 여러 가지로 모자란다고 생각하면 직장 생활하기가 굉장히 힘들지요. 못난 사람에게 지시를 받는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니까요. 직장인들이 술자리에 가면 윗사람 뒷담화나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의외로 윗사람의 장점을 쉽게 인정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자존심을 덜 상하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노예와 귀족은 애당초 씨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노예 생활을 견디기 쉽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상대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무조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쟁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만 그런 심리가 작용합니다. 이것은 진화의 결과입니다. 경쟁에서 밀려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 성격도 유전자의 영향을 받아서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그 유전자는 어떨까요? 후손에게 잘 전해질까요? 아니겠지요. 생존에도, 배우자를 고르는 경쟁에도 불리하니까요. 즉 자존심은 경쟁상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주로 작동하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경쟁심을 느껴서 자신을 분발시켜 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가 있습니다. 노예와 귀족같은 경우입니다. 이럴 때 자존심은 스스로를 괴롭히기만 할 뿐이죠. 이런 경우라면 차라리 “저 사람과 나는 리그가 다르다. 부딪힐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편합니다.

신분효과… “불안한 사회, 카리스마를 원한다”

이런 심리를 이해하면 진보 정당이 노동자층에서 충분히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 저소득, 저학력 계층이 오히려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이유가 이해가 됩니다. 세상이 단일 리그라는 것을 깨우쳐 주는 사람이 불편하기 때문이지요. 세상이 단일리그라면 자신의 위치는 경쟁에서 밀린 패배자가 되지요. 아예 리그가 다르다면 자기 잘못이 아니니까 자존심이 덜 상합니다. 또 서민적인 대통령이 오히려 사소한 실수로도 심한 비난을 받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하층계급 출신인데도 나보다 잘났다는 것이 불편하거든요. 그러니 단점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은 정해진 용어는 없는데… 임시로 ‘신분효과’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어쨌든 지난주에 말한 롤 모델 효과와 정반대로 작용하는 효과이지요. 무언가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말도 애매하게 하고, 적당히 권위도 내세우는 것이 하나의 선거 전술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정리해 볼까요? 자긍심이 강한 유권자에게는 롤 모델 효과가 더 크게 작용하겠지요. 반면에 자긍심이 약한 유권자일수록 신분효과가 더 작용을 합니다. 중산층이 두텁고, 안정된 사회에서는 롤 모델 효과가 더 작용을 합니다. 계층간 장벽이 두껍고, 불안한 사회가 되면 오히려 신분효과가 작용을 합니다. 카리스마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것이지요.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롤모델 효과와 신분효과의 함수관계

이번 선거를 보면 이 두 가지가 재미있게 얽혀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같은 경우는 최근 몇 번의 선거에서 가장 강력하게 신분효과를 누리고 있는 후보입니다. 반면 롤 모델 효과는 거의 누릴 수 없지요. 특수한 신분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동일시 효과를 기본적으로 차단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선거 전략 역시 권위나 품위를 유지하는 쪽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요.

문재인 후보는 롤 모델 효과 쪽을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 발 한발 자신의 노력으로 현재의 위치에 왔다는 것이지요. 원래 롤 모델 효과는 젊은 사람에게 더 크게 작용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의 경우는 나이든 사람에게도 작용을 하는 좀 특이한 롤 모델 효과입니다. 자식에게 추천하고 싶은 롤 모델로 작용하는 것이지요. 성실하고, 점잖고, 합리적인 이미지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소박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쌓아나가는 것이 롤 모델 효과를 가장 확실하게 다지는 방법일 것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젊은 층에게는 강한 롤 모델 효과를 얻으면서 출발했는데, 너무 여러 가지에서 성공했다는 것이 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동일시가 어렵게 만들거든요. 반면에 신분 효과는 어느 정도 자극하는 면도 있지요. 이 두 가지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 매우 경쟁력 있는 후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하는 면이 있어서 지지도가 의외로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취약점도 있습니다. 형식 논리에 너무 치우친다거나 하면 교만한 천재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면서 강한 거부감을 부를 수도 있거든요.

지난 글과 마찬가지입니다. 신분 효과나 롤 모델 효과나 선거의 가장 결정적인 면은 물론 아닙니다. 다만 알고 보면 재미있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지요.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