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醫 김명근의 마음산책] 긍정의 힘⑤ “행복수첩을 적어라”
싸울 땐 왜 나쁜 기억만 떠오를까?
대부분의 부부 싸움은 사소한 일로 시작이 됩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점점 커지는 경우가 많지요. 싸우기 시작하면 잊고 있었던 서운한 기억들, 억울한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어떤 부부들은 바둑 복기하듯이 미주알고주알 꺼내 놓으며 싸움을 키웁니다. ‘부부대화법’류의 책이라도 한 권 쯤 읽은 조금 참을성 있는 부부들은 이야기가 번지게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며 말하려다보니 쓰는 단어들이나, 말투가 점점 날카로워집니다. 한참을 싸우다 보면 ‘내가 도대체 이 인간이랑 왜 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죄다 서운한 기억, 억울한 기억뿐이지 좋은 기억은 떠오르는 것이 없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마음이 가라앉고 나서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살면서 좋았던 일도 적잖이 있거든요. 문제는 왜 싸우는 중에는 나쁜 기억만 떠오르냐는 것입니다. 싸우는 중에 좋은 기억이 하나라도 떠오른다면 싸움이 그렇게 험악해지지 않을텐데, 그게 안 됩니다. 좋은 기억은 어디 장기 출장이라도 갔는지, 좋은 기억끼리 모여 엠티라도 떠난 것인지 도무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거든요. 어떻게든 화해해보려는 마음이 들 때쯤이면 머릿속에 단체로 등장하는 좋았던 기억들이, 왜 싸움 중에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 번에 떠올리는 연관 기억의 수는 7개
우리 뇌의 기억과 회상의 원리를 알면 이런 현상이 이해가 됩니다. 보통 사람이 머리에 동시에 활성화시킬 수 있는 일화 기억은 7개 정도라고 합니다. 컴퓨터에 비교하자면 동시에 7개 정도의 창을 띄울 수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현재 화면에 올라와 있는 내용과 연관이 있는 내용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는 스포츠 중계 동영상, 바둑 싸이트, 워드 프로세서, 포탈 싸이트, 웹진…. 뭐 이런 식으로 다양한 창을 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머리는 야동을 띄우면 야동만 7개가, 포탈을 띄우면 포탈만 7개가 뜨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되는 것이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기억을 활용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니까요. 업무를 할 때라면 머리의 이런 경향은 꽤 도움이 됩니다. 즐거운 기억을 회상할 때도 문제될 것은 없지요.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는 골치 아파 집니다. 그 부정적인 분위기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특히 문제가 하나 생기면 확실한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그 생각에서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심각합니다. 문제에 대한 생각을 하더라도 분위기를 바꿔가며 생각할 수 있으면 되는데, 문제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분위기까지 함께 이어지면 점점 부정적 사고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행복수첩…싸움 중 긍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방법?
긍정심리학에서 추천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행복수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작은 수첩을 하나 마련합니다. 한 장에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적습니다. 좋았던 일들만 적는 것이지요. 많이 적을 필요도 없습니다. 서너 개면 됩니다. 넉넉하게 적어도 7개면 충분합니다. 남편이나, 아내에 대해서 한 장, 자녀가 있으면 자녀마다 한 장, 회사에서 골치 아픈 일이 많은 사람은 업무상 자주 어울리는 동료에 대해서도 한 장 정도 적습니다.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 몇 명에 대해서 적는 것이지요. 싸움이 생기면 중간에 자리를 뜹니다.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편이 좋지요. 물 한잔 마시고 오겠다고 하거나, 머리 좀 식히고 이야기하자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나가서 행복 수첩을 펼쳐 그 사람과의 행복했던 기억을 생각해보고 다시 들어가는 거지요. 물론 들어갈 때는 수첩은 다시 숨기고 들어가세요.
효과요? 해 보세요. 놀랄 만큼 효과가 있습니다. 싸움이 커지는 것을 막는 정도가 아닙니다. 더 큰 부수 효과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인격적으로 아주 수양이 잘 된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 있거든요. 행복 수첩이라는 꼼수를 쓰지 않고도, 싸움 중에 긍정적 기억도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수양을 쌓은 고수거든요. 이건 굳이 과시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본능적으로 느끼게 돼 있는 겁니다. 행복수첩은 상대로부터 존경심과 애정을 얻어낼 수 있는 아주 강력한 꼼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