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근의 마음산책] 감정 이야기? “질투에서 벗어나는 방법”

프로포폴 중독…개인이 치르는 ‘승자의 저주’

승자의 저주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기업의 인수 경쟁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전망이 괜찮은 기업이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인수 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잘 나가는 공기업이 시장에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망이 괜찮다는 것은 적절한 가격에 인수를 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경쟁이 격화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특히 평소에 라이벌 의식이 강하던 기업들끼리 경쟁이 붙으면 인수가격이 무리할 정도로 올라가는 경우가 생깁니다. 결국은 인수 경쟁에 성공한 모기업이 흔들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지요. 패자는 살아남고, 승자가 오히려 망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승자의 저주라고 합니다.

우리는 ‘패배를 당했다’는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패배는 늘 당하는 것일까요? 패배를 선택하는 경우는 없을까요? 승리에는 비용이 따릅니다. 승진에는 개인 시간의 희생이 따릅니다. 남을 밟고 일어서려면 인간관계의 희생이 따릅니다. 개인에게도 승자의 저주가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는 프로로폴 중독 같은 경우 역시 개인이 치르는 승자의 저주라 부를 만합니다. 짧은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다음 스케줄을 뛰려다보니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존 환경이 아주 열악하던 시절에 경쟁은 살아남아 후손을 퍼뜨리는 중요한 본능이었습니다. 승자는 살고, 패자는 죽는 상황이 되면 비용의 계산은 무의미해집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미 인간의 총 생산이 총 소비를 넘어선 세상입니다. 이기는 것은 적절한 비용으로 이길 수 있을 때 의미를 가지는 세상이 되어갑니다. 즉 패배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은 몇 천 년으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아직도 개인간, 부족간 무력 충돌로 자원 부족을 해결하던 몇 만 년 전의 본능에서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데 본능의 변화는 더디다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감정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경쟁…’즐겁게 살고 계신가요?’

경쟁의 가장 큰 비용은 괴로움입니다. 인간의 집중은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물질에 의해 이뤄집니다. 집중의 순간은 즐겁습니다. 긴장은 코티졸, 에피네르핀 같은 물질에 의해 이뤄집니다. 몸도 마음도 괴롭습니다. 당연히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경쟁심은 집중을 방해합니다. 집중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긴장으로 해결을 하게 만듭니다. 같은 일을 해도 훨씬 더 많은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듭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아주 비효율적인 자원의 낭비입니다. 늘 비상계엄령 하에서 돌아가는 나라와 같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는 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결국은 안으로 곪기 마련입니다.

질투는 몇 만 년 전에는 아주 유용한 본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만큼 인간에게 깊숙이, 강하게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내가 패배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질투심을 억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질투를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패배를 선택했다고 생각을 전환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경쟁은 누가 더 행복하고 즐겁게 살았느냐는 것. 그것이 유일한 경쟁이라는 식의 인식 전환. 이것이 질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시기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몇 가지 실전적인 테크닉들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질투의 문제에서는 막연하고 힘든 인식전환이라는 해결책만을 내세우는 것을 보고 좀 실망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어렵습니다. 시기는 나에게 상대적으로 덜 치명적인 부분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질투는 나에게 치명적인 부분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쉽게 조절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삶의?가치를 분산시켜라

그나마 실전적인 방법이라면 질투를 시기로 바꾸면 됩니다. 우리는 흔히 시기가 질투보다 더 나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기가 질투보다 다루기가 쉽습니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앞에서 답이 나왔습니다. 치명적인 것을 치명적이지 않게 만들면 됩니다. 삶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시기심은 느낄 수 있어도 질투심은 크게 느끼지 않습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닐지 모르겠습니다만, 플레이보이는 질투심을 느낄 시간에 다른 여자를 향해 달려갑니다. 삶의 가치를 분산시키면 시기심을 다루는 테크닉을 질투심에서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것은 꼭 증권투자에만 유용한 격언은 아닙니다.

질투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질투 문제의 핵심인 남녀 문제에서의 질투심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다시 하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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