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근 칼럼]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두 가지 방법

교수가 학생을 불러 지루한 일을 시킨다. 필름 릴을 상자에 담아 내다버리는 단순한 일을 반복하도록 한다. 충분히 지루해 할 때쯤 작업을 끝내고 학생을 내보내며 부탁한다. “뒤에서 같은 작업을 하려고 기다리는 학생이 있네. 그 학생에게 이 일이 재미있었다고 말해주게”라고. 그리고 돈을 준다. 그런데 어떤 학생에게는 20달러를, 다른 학생에게는 1달러를 주었다. 리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라는 사회심리학자가 한 실험이다. 무엇을 위한 실험이었을까?

교수는 나중에 그 학생들을 다시 불렀다. 그리고 그 일이 어느 정도 지겨웠냐고 물었다. 20달러를 받은 학생들은 대부분 매우 지겨웠다고 대답했다. 1달러를 받은 학생들은 할 만 했다는 대답이 많았다. 왜 대답의 차이가 났을까? 20달러를 받았으면 가벼운 거짓말 정도는 해도 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1달러를 받자고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어떻게 해야 그 불편함이 줄어들까?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불편함이 줄어들 것이다. 무언가 일의 의미를 찾고, 진짜로 지루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려고 애쓰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다. 그런데 의미는 찾으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의미에 따라 행동한다. 하지만 행동 뒤에 의미를 붙이기도 한다.

영화 <26년>에는 1980년 봄 광주에 투입됐던 계엄군 출신 두 명이 나온다. 둘 다 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다. 그 중 한 명 김갑세는 광주 피해자들의 유자녀들을 모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암살을 기획한다. 다른 한 명 마상열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 목숨을 걸고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킨다. 부당함에 의해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이 트라우마를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부당함에 저항하고 극복하는 길이 그 하나다. 김갑세의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사람들은 쉬운 둘째 길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부당함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방법이다. 마상열의 길이다. 부당한 제도나 관행은 그런 나약함을 먹고 생명을 유지한다.

군사문화는 합리성을 배제한다. 판단은 지휘관이 하고 병사는 명령에 합리성을 따지면 안 된다. 전투라는 특수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조직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속성이긴 하다. 그러나 병사 역시 사람이다. 합리성 추구를 본능으로 갖고 있다. 어떻게 해야 그 본능을 누르고 지휘관을 따르게 할 수 있을까. 지휘관의 명령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임을 결과로 계속 보여주면 된다. 믿음이 생긴 병사는 합리성을 묻어두는 것에 자발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는다. 정반대의 방법도 있다. 지극히 비합리적인 것조차 무조건 따르게 강압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다. 합리성의 추구라는 본능 자체를 파괴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에도 병사는 따르게 된다. 그러나 본능이 파괴된 자리에는 넝마 같은 상처가 남는다.

상처를 줄이는 것은 의미다. 무모함을 용감함이라고, 생명경시를 대담함이라고, 불합리를 도전정신이라고 거짓 의미를 붙여 상처를 아물린 사람들이 있다.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겼던 사람을 목숨 걸고 경호하는 마상열처럼 자신의 상처를 옳은 길이라고 주장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합리적이고 안전한 길은 나약한 길이라고, 민간인도 모두 군인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학생을 해병대 캠프에 보내 무모함에 도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상처를 다스리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 의해 젊은 봉우리 다섯이 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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