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근 칼럼] ‘자신의 영역’에 집중하라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고 쫓아온다면 누구라도 열심히 달아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렇게 쫓긴 다음 “늑대에게 쫓기니까 달리기가 정말 빨라지는구나. 다음에는 호랑이에게 한번 쫓겨 봐야지. 그럼 달리기가 더 빨라질 거야”라는 생각을 한다면 어떨까? 정상인으로 봐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시는 산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사람이 평소보다 높은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도파민에 반응할 때다. 뇌 속 전두엽, 대상회 등이 활성화돼 뭔가 성취하고 싶을 때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집중’이라고 부른다. 다른 한 경우는 두려움을 피하려 할 때다. 코티졸,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스트레스성 호르몬이 쏟아지고, 편도체가 활성화된다. 이 상태를 ‘긴장’이라 부른다.

모든 성취는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질까? 그래서 계속 기능을 향상시킬까? 집중의 결과는 그렇게 이어진다. 그러나 긴장은 다르다. 그 대상에 대한 혐오나 공포가 생긴다. 어린 시절 심한 야단을 맞아가며 낱말카드로 한글을 배운 아이들은 평생 글읽기, 글쓰기를 싫어하게 된다. 글자를 보면 왠지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긴장으로 기능을 끌어올리는 것이 곧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다.

올 한 해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던 류현진이란 젊은이가 있다. 구속이 제법 빠르기는 하지만 메이저리그를 기준으로 보면 평범한 수준이다. 변화구도 수준급이기는 하지만 정상급에는 못 미친다. 그런데 그 루키가 웬만한 구단 제1선발급의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는 시즌 내내 대기석에서 끊임없이 장난을 쳤다. 웃음은 긴장을 풀어준다. 류현진의 장난의 주된 파트너였던 노장 유리베와 어린 신인 푸이그가 시즌 내내 좋은 성적을 보였던 것도 긴장조절 성공이란 면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긴장이 너무 풀어지는 것은 곤란하다. 적절한 긴장은 투쟁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프로선수의 경우 약간의 긴장은 필요하다. 그러나 긴장이 집중을 잡아먹을 정도로 커지는 순간 근육은 경직되고, 두뇌회전은 느려지기 시작한다. 잘 던지던 신인들도 안타를 맞고 나면 심하게 긴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주자가 나간 상황을 새롭게 도전해야 할 과제로 편하게 받아들이는 투수도 있다. 류현진이 누구보다 병살타 유도 횟수가 많았던 비밀 역시 긴장조절 능력에 있다.

상대팀 투수가 만만치 않을 때면 기자들은 꼭 질문을 했다. “상대팀 에이스와 붙게 됐는데 어떤가요?”라든지, “신인왕 경쟁자와 맞붙는데 어떤 각오인지요?”라는 식이다. 류현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저는 상대팀 투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들을 상대하는 것입니다”라고. 그는 시즌 내내 다승보다는 방어율에 더 신경을 쓴다고 했다. 승패는 자기 혼자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잘 던져도 우리 편 타자들이 못 치면 방법이 없다. 또 수비에서 터무니없는 실책이 계속 나오면 이 역시 투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방어율은 오로지 자신의 투구에 달린 문제다.

주인의 의중을 모르는 노예는 늘 긴장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승패에 집착을 하는 순간 우리는 운명의 신이라는 변덕 심한 주인을 섬기는 노예가 된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 자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는 것. 이것이 긴장을 피하는 핵심이다.

대학입시철이다. 학부모, 교사라면 류현진의 성공을 보며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숫자로 된 목표를 강조하지 않았는지를, 실패의 두려움을 너무 강조하지 않았는지를, 나는 아이 뒤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쫓는 늑대가 아니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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