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근 칼럼] 진실 호도하는 ‘진정성’의 함정


옳지 않은 길은 미로일 뿐

신앙심이 두터운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믿었다. 진실한 기도는 통하기 마련이라고. 어느 날 그녀가 사는 마을에 홍수가 났다. 사람들은 서둘러 피했다. 그러나 그녀는 피하는 대신 기도를 했다. 비를 멈추고 물살을 잔잔하게 해 달라고. 물은 점점 차올랐다. 그녀는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 때 구조대가 배를 타고 나타났다. 구조대원이 외쳤다. “얼른 타시오!” 그녀는 배에 오르지 않았다. 웃으며 대답했다. “신이 저를 구해줄 것입니다”라고. 물은 점점 더 차올라 처마 밑까지 이르렀다. 그녀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졌다. 그 때 다른 구조대가 왔다. 그러나 그녀는 기도의 목소리만을 더 높였다. 지붕도 거의 잠길 무렵, 한층 더 거세진 물살을 헤치며 목숨을 건 마지막 구조대가 왔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마저도 거절을 했고, 그것이 마지막 거절이었다. 그녀는 결국 물에 쓸려 죽었다. 그녀의 영혼이 신을 만났다. 그리고 물었다. “제가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왜 저를 죽게 내 버려두었습니까?” 신이 답했다. “내가 너를 위해 세 번이나 구조대를 보냈건만, 너는 세 번 다 거절했다”고.

목표했던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람은 좌절을 느낀다. 무엇보다 일단 괴롭다. 이를 피하기 위해 사람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크게는 목표를 바꾸는 방법과 안 바꾸는 방법으로 나뉜다. 목표를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목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이다. 포도를 따 먹는데 실패한 여우가 “저 포도는 실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조금 비겁해 보이기는 하지만 무난한 방법이다. “내가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했던 것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굶어 죽을 정도는 면했으니, 이제 수입이 줄어도 당당할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자” 영화에서 주인공 송우석이 인권변호사로 변신하며 사용했음직한 방어기제다.

그런데 자기 목표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기 시작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는 것은 결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결과를 보여주면 다시 나를 지지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된다. 대운하 계획을 4대강 정비로 바꿔치는 술수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의 진심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위의 우화에서 말한 기도하는 여인의 경우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를 해도 신은 할 일을 해야 한다. 한 사람의 기도로 홍수를 막을 수는 없다. 신은 구조대를 보내 줄 뿐이다.

예전에는 별로 쓰이지 않던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있다. 요즘 들어 정치인들 입에 자주 오른다. 그런데 이 진정성이라는 것이 때로는 아주 고약한 함정이 된다. 진정성의 함정은 전혀 길이 아닌 것을 길로 보이게 만든다. 목표 자체가 틀렸을 때, 진정성은 이를 해결하는 길이 아니다. 점점 더 해결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미로의 입구일 뿐이다.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신은 로또번호를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시험문제를 가르쳐 주는 경우도 없다. 옳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철도공사가 가장 흑자가 나는 노선을 자회사로 떼어내려 한다. 정부는 경쟁력 강화와 철도공사 정상화가 목표라 말한다. 국민들은 민영화가 목적이 아니냐고 의심한다. 정부는 말한다. 왜 정부의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느냐고. 동문서답이다. 진정성은 핵심이 아니다. 그 조치가 옳으냐 아니냐가 핵심이다. 다행히 장기파업의 파국은 막았다. 그러나 해결됐다고 보기엔 이른 듯하다. 정부가 진정성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영원한 미로가 될 것이다. 국민이 의심하는 것은 진정성이 아니다. 판단의 정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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