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근 칼럼] 월드컵 성적에 목숨 걸지 말라

우루과이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의 눈물.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가나팀을 울렸던 수아레스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이 좌절되자 그라운드를 떠나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가 위대함 보여주는 집단최면 도구 아닌 즐기는 축구를

좋은 비단 옷을 입고 흙탕길을 걸어간다면 누구나 조심스레 걸어간다. 하지만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간다면 흙이 튀는 것에 별 신경을 안 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몸이 옷을 입듯, 마음도 옷을 입는다. 내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느끼느냐는 것, 그것이 내 마음이 입고 있는 옷이다. 자긍심이 높은 사람은 행동에 절제가 있다. 그래서 존중으로 키운 아이가 행동이 바르다. 야단으로 키워 자긍심을 망가뜨린 아이는 행동이 거칠다. 우리는 까칠한 사람을 보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잘못된 말이다. 내 옷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당당하되 편안하다. 헤어진 옷을 입은 사람은 남에게 찢어진 곳을 들킬까봐 행동이 예민해진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 예민한 법이다.

남 앞에 입고 나갈 옷이 마땅치 않을 때 무난한 옷이 제복이다. 제복은 비교의 완충장치 노릇을 한다. 하지만 제복은 개인으로서의 개성을 억압하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자유주의성향의 사람은 꼭 입어야 할 때가 아니면 제복 입기를 즐기지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자긍심이 높아지면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고,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다. 자긍심이 낮아지면 자신을 집단의 일원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올라간다. 마음에 제복을 입히려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민족이나, 국가를 강조하는 극우정당에 끌리는 이유를 보통 이렇게 설명한다.

일부 나라, 축구 통해 삶의 어려움에서 눈 돌려

현대사회에서는 축구가 집단의식을 나타내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축구 실력은 국력과 관련이 깊다.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독일이 축구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국력으로는 유럽에서 2~3위를 늘 지킨다. 그러나 축구는 여러 강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종종 떨어진다. 프랑스는 개인의 개성을 매우 중요시하는 나라다. 집단의식에 쉽게 매몰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씩 플라티니나 지단 같은 선수들이 나타나 이른바 아트 사커를 보여주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기도 한다. 그들에게 축구는 프랑스라는 국가의 위대함을 보이기 위한 용도가 아니다. 즐기는 축구, 아름다운 축구일 뿐이다. 반면 국력에 비해 축구대회 성적이 좋은 나라들이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네 나라가 2010년에 경제위기를 겪었다. 현재도 삶의 만족도나, 지니 계수(경제불평등 지수) 등이 유럽에서 하위권에 속한다. 그들은 축구를 통해 삶의 어려움에서 눈을 돌리고 있다.

세계에서 축구 사랑이 가장 뛰어난 곳은 브라질일 것이다. 지금 브라질은 월드컵 열기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도 월드컵 반대시위가 있었다. 월드컵 개최지가 브라질로 처음 정해질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룰라 대통령을 거치며 생긴 변화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되찾을 수 있는 정치가 펼쳐졌기에 축구 강국의 국민이라는 자긍심에 목을 맬 필요가 과거보다 줄어든 것은 아닐까?

가장 우울한 경우는 개인으로서의 자긍심도, 집단으로서의 자긍심도 동시에 떨어질 때다. 마음이 입을 옷이 없어진다. 우리나라 월드컵 열기가 예전만 못하다. 대표팀의 성적에 따라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칼럼을 쓰는 지금을 기준으로 하면 아직은 조용하다. 물론 나라가 큰 비극을 겪었으니 차분해지는 것이 당연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다. 마음에 대한민국이라는 제복을 입히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느끼는 상황이 된 것은 아닐까?. 가장 좋은 것은 개인으로서 자긍심도 가지면서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자긍심도 가지는 것이다. 대표팀의 축구 성적에 목숨을 걸지 않으면서도 즐겁고 당당하게 응원은 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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