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근 칼럼] ‘하나님 뜻’ 함부로 재단하는 사람들

[아시아엔=김명근 행복한한의원 원장] 심리학자 스키너가 부리로 레버를 쪼면 모이가 나오는 장치에 비둘기를 넣었다. 그리고 모이가 불규칙한 간격으로 나오게 했다. 어느 비둘기가 펄쩍 뛰고 나서 레버를 쪼자 모이가 나왔다. 이 비둘기는 한 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다른 비둘기는 오른쪽으로 한 번 돌고 나서 레버를 쫄 때 모이가 나왔다. 이놈은 레버를 쪼기 전에 꼭 오른쪽으로 한 번을 돌았다. 사람은 어떨까? 비둘기는 몇 번 실패하면 자신의 행동이 모이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버린다. 하지만 사람은 아직 시도해 볼 것이 많다. 점프하는 사람은 점프의 높이를 바꿔보고, 각도를 바꿔 본다. 도는 사람은 맘보 리듬으로, 차차차 리듬으로, 탱고 리듬으로 어느 리듬이 답인지를 알 때까지 돈다. 미신은 그렇게 탄생한다. 로또 번호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이유다.

아이들은 늘 “이건 뭐야?”, “왜?”를 입에 달고 산다. 사람은 원래 궁금한 것을 못 견디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모르면 그냥 당해야 한다. 그래서 진화는 알고자 하는 본능을 심어 주었다. 비둘기에게도, 사람에게도. 아는 과정은 비둘기나 사람이나 똑 같다. 경험을 기준으로 가설을 세운다. 가설에 따라 시도를 한다. 맞으면 믿음의 정도를 높이고, 계속 틀리면 포기하고 다른 가설을 세운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지금 그가 가장 높게 신뢰하는 가설의 집합일 뿐이다. ‘레버를 누르기 전에 한 바퀴를 돌면 모이가 나올 확률을 높일 수 있다’라는 비둘기의 믿음과 나의 지식 중에 어느 것이 정확한지를 명확히 증명할 방법은 없다.

모르면 불안하다. 불안을 벗어날 방법은 세 가지 정도가 있다. 모르는 것이 있어 세상이 오히려 흥미롭다고 생각하거나, 모르는 것을 연구하는 것을 재미로 느끼면 모름은 즐거운 도전 과제일 뿐이다. 두 번째로 무시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면 되지 뭐가 불안하냐는 배짱을 가지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세 번째가 내가 모르는 영역이 초월적인 어떤 존재에 의해 조절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인간이 종교를 만든 이유다. 종교란 모름에 대한 겸허에서 시작된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불안의 귀에 대고 속삭이지 못하도록 함에 넣고 봉인을 한 것이다. 종교를 가지려면 함부로 봉인을 뜯어서는 안 된다. 신의 뜻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겸허함, 그것이 종교를 건전하게 만드는 기본이다. 종교인이 이를 잊는 순간 비둘기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국무총리 후보였던 분이 교회에서의 강연 내용이 문제가 되어 후보 자리를 사퇴했다. 일본의 조선 지배,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라는 특별한 곳에서 같은 종교를 가지는 사람들과 한 이야기라는 점을 고려해 달라”라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로 끝났다면 나는 그의 변명을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통역사를 자처했다. 그는 일본의 지배는 조선의 무능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했다. 한국전쟁은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 미국을 잡아 놓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그의 강연 내용은 평소에 그가 하던 극우적 주장에 불과했다. 게다가 일본이 무력에 의한 침략을 강변하기 위해 만든 거짓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자기의 뜻을 펼치기 위해 종교의 권위를 훔쳤다. 함부로 신의 뜻이라 주장하는 교만을 저질렀다. 나는 당신들보다 신과 더 가깝게 있고,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주장을 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성경을 다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을 독사와 같은 자들이라고 했다. 자신의 물건을 신성한 물건인 것처럼 성소 주위에서 파는 이들을 채찍을 휘둘러 쫓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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