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근 칼럼] 실명제가 우리사회에 필요한 이유

도덕과 양심은 이를 떳떳이 밝히는 것에서 시작

[아시아엔=김명근 행복한마음 한의원 원장] 몇년 전 어느 황태전문 식당에서 재미있는 원산지 표시를 보았다. ‘황태:홍기만 이장님 덕장, 쌀:최덕배씨(실이 삼촌)네 논, 상추, 고추:박분녀씨(정이 할머니)네 밭, ….’ 관광지 가는 길목에서 길손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었다. 손님은 정이 할머니가 농약을 얼마나 적게 쓰는지, 실이 삼촌이 어떤 품종의 벼를 재배하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원산지 표시판에서는 미소가 느껴졌다. 이 집 황태국밥은 안심하고 먹으라며 이장님, 덕배씨, 박분녀 할머니가 웃고 있었다.

이름을 밝혔다는 작은 사실이 믿음을 훨씬 올려주는 것은 왜일까? 간단하다. 떳떳하지 못한 사람은 이름 밝히기를 싫어한다. 정이 먹이는 상추와 식당에 넣는 상추가 차이가 많이 난다면 박분녀 할머니는 이름을 밝히기 싫어했을 것이다. 식당 주인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엉망으로 만들면 큰 형님으로 모시는 이장님도, 형님, 아우하며 지내는 덕배씨도, 이모처럼 대하는 정이 할머니도 모두 함께 욕을 먹게 된다. 웬만큼 도덕이 마비되지 않고서는 동네 사람 이름을 내걸고, 화학조미료 범벅인 음식을 내놓거나, 몸에 해로운 식품첨가제를 마구 넣지는 못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별로 합리적인 일은 아니다. 어차피 지나치는 여행객 상대 장사다. 그저 마케팅차원에서 그런 원산지 표시판을 내걸었을지도 모른다. 믿어도 될까? 믿는 편이 좋다. 사람의 진화가 그리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도 모르고 지내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사람은 여전히 씨족사회, 부족사회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본능은 사람끼리 뻔히 알고 지내던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머리로 따져가며 산 것이 아니다. 남에게 못할 짓을 하면 마음이 켕기기 때문에 그것이 싫어서 양심을 지킨 것이다. 진화 과정이 우리 마음에 남긴 선물이다. 지나가는 여행객을 특별히 위하지 않더라도, 특별히 양심적인 사람이 아니라도 본능은 똑 같다. 이름을 내거는 순간 스스로가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양심적인 행동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이다.

권한·보람·양심은 한 세트
이름을 거는 것만으로도 평소보다 양심적이 된다는 것을 한번 뒤집어 생각해 보자. 이름을 숨기면 도덕으로부터 둔감해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 뒤에 숨어 있을 때는 앞에 나와 있을 때보다 도덕의 자극을 덜 느끼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배후 실세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숨어 있는 실세는 앞에 나와 있는 사람의 도덕도 함께 무너뜨린다. 권한만 있고, 책임이 없는 사람은 도덕에 둔해질 수밖에 없다. 권한과 보람과 양심은 한 세트로 제공되는 세트메뉴이기 때문이다.

숨어 있는 자가 힘을 갖게 되면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황태식당 손님들이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듯이, 국민들은 자신이 위임한 권력이 떳떳하게 이름을 걸고 책임지는 양심적인 사람들에 의해 행사되기를 원한다. 식당에 원산지실명제가 있듯이 정부에도 권한과 책임이 같이 가는 행정실명제가 필요한 이유다. 도덕과 양심은 바로 이름을 떳떳이 밝히는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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