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공자의 부활

<한중수교 20주년 특집> 중국의 빛과 그림자②?’미국 공자학원의 의미’??

“공자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오직 영원히 존재할 뿐이다.”

맥아더가 남긴 유명한 말,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를 좀 비틀어 보았다.

공자가 남긴『논어』는 오늘날에도 중국 서점가에서 홍루몽, 서유기, 삼국지, 수호지 등과 더불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한다.『논어』에 나오는 주옥같은 표현들은 지식인들뿐 아니라 서민들의 입을 통해 그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이~쑤오~부우~ 위~, 우스~위이~러언(己所不欲 勿施于人 ).”

공자의 가르침처럼, 자신이 내키지 않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법이다. 우리에게는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라는 말이 더 친숙하며, 문어적 표현에 가끔 사용될 뿐이다.

공자(기원전 551~479)는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이다. 오늘날 산둥성 취푸(曲阜)가 그의 고향이다. 7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 제자가 3000여 명에 달하였고, 수제자만도 72명에 이르렀다.

그는 생전에 몹시도 벼슬을 추구하였다. 공자는 왜 그토록 벼슬에 집착하였는가. 그의 신념대로 평소 갈고 닦은 학문과 경륜을 펴 보고자 함(?而??仕)이었다. 50세에 법을 담당하는 사구(司寇)라는 벼슬에 올랐으며, 이어 재상까지 겸직하였으나 노나라에서는 끝내 그의 경륜을 펼칠 수 없었다. 노나라 위정자들은 그의 간언(諫言)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제자들을 데리고 장장 14년에 걸친 ‘주유천하(周遊天下)’를 시작한다. 말이 주유천하이지, 사실 유랑걸식이나 다름없었다. ‘노숙천하(露宿天下)’라는 말이 더 타당할 듯하다. 공자 스스로도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는 ‘상갓집 개(?家之犬)’에 비유하였다.

몇 해 전 상영됐던 영화 ‘공자’에 보면, 저우룬파(周潤發)를 통해 공자의 기구한 삶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공자는 죽어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신문화 운동을 전개하던 루쉰, 천뚜슈, 후스, 리다자오 등에 의해 ‘교조화한 공자’는 무차별로 두들겨 맞았다.

영화 ‘공자’는 비록 흥행에 실패하였지만,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했던 공자는 상갓집 개에서 일약 ‘세계의 귀빈’으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중국어 열풍이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중국 교육부 자료를 인용한 중앙방송의 보도에 의하면, 2012년 5월 말 현재 105개 국가, 358개 지역에 공자학원이 설립되었다. 그 중? 콧대 높은 미국에만 무려 81곳에 공자학원이 세워졌으며, 300여 곳에 관련 과목(중국어, 중국문화 등)이 개설되었다. 그리고 2100여 명에 달하는 ‘공자의 후예’들이 미국의 강단에서 중국어와 중국의 역사, 문화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바야흐로 중국의 시대(Pax-Sinica)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한 세기도 훨씬 더 지난 시절, ‘세계의 병자’ 중국인들은 쿨리(苦力, coolie)라 불리며 미국의 철도 부설 현장, 광산, 댐 건설현장 그리고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다 비운의 삶을 마감했다.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인들은 중국어 학습에 몰두하고, 중국 사람들은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린다. 마치 두 강대국이 서로를 알기 위해 치열한 줄다리기 시합을 하는 것 같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티브이 화면을 보니, 벽안(碧眼)의 어린아이들이 붓을 잡고 열심히 한자를 ‘그리고’ 있다. 중국어는 더 이상 지역어가 아닌 세계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미 1억 이상의 외국인이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한중 수교의 산증인으로, 중국대사를 역임했던 권병현(74)씨는 지난 8월 모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힘주어 말한다.

“선진 각국에서 중국어 학습은 이미 대세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자녀가 만 3살이 되면 중국어를 의무적으로 배우게 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 중국어를 배우지 않고는 국제사회에서 불편해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

‘중국’이라면 넌더리를 치던 아내가 진한 중국 향료에 ‘오염’이 됐는지, 대학 2년생 조카에게 중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침을 튀겨가며 말하자, 철없는 조카가 한가한 소리를 한다.

“스페인이 아름다워서 나중에 여행하려고 스페인어를 공부하려고 해요.”

벽에 붙여 놓은 중국과 한국 지도를 바라볼 때마다 비관적인 생각이 가슴을 짓누른다. 13억을 머리에 이고 사니 늘 머리가 무겁고 아프다. 9월25일 ‘거보’를 내딛은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호가 왼쪽 옆구리(서해안)를 쿡쿡 쑤셔댄다. 늑막염이 걸린 것처럼 왼쪽 옆구리가 아려온다.

서방의 코 큰 사람들은 중국을 알려고 앞 다투어 난리 법석인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만 왠지 태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욕과 수난의 역사를 벌써 잊었는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중국을 뼛속 깊이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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