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식언이 난무하는 사회 “언제 밥 한 끼 해요”

내뱉은 말을 지키지 않는 것을 식언(食言)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언제 밥 한 끼 해요”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그냥 한 번 내뱉고 바쁘단 핑계로 안 지키면 그만이다. 어느새 이 말은 겉치레 인사가 되고 말았다. 세상을 가볍고 쉽게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순박한 사람들마저도 ‘식언’을 비웃다가 제 자신도 물들어 스스로 식언을 일삼는다.

꽤 오래 전에 알게 됐던 강모 씨의 얘기다. 그는 직장 동료였으며 무엇에 쫓기듯이 늘 분주하였다. 스포츠로 깎은 짧은 머리에 준수한 용모의 그 사람은 늘 묵직한 서류를 옆에 끼고 다녔다. 온화한 미소에 다정한 목소리, 저절로 믿음이 갔다. 어느 날 복도에서 그와 부딪혔다.

“우리 진주 강 씨끼리 밥 한 끼 합시다. 내가 언제 자리 한번 마련할게요.”

만날 때마다 똑같은 말을 고장난 라디오처럼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2년의 세월이 지나 그와 헤어졌다. 결국은 말 뿐이었다. 그가 지금도 바삐 움직이며 누군가에게 “언제 밥 한 끼 합시다”라며 지껄이고 다닐 것을 생각하면 왠지 입맛이 씁쓸해진다.

장사꾼이야 적절히 ‘교활’해야 돈을 벌 수 있다. 장사치들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것은 다반사일 것이다. ‘상인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후쉐옌(胡雪岩, 1823~1885)은 “단 한 푼이라도 벌 수 있다면 서슬 시퍼런 칼날에 묻은 피라도 핥을 수 있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런 그에게도 식언이란 있을 수 없었다. “반란군에게는 무기를 팔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그는 뱉은 말은 반드시 지켰다. ‘반란군’인 태평천국 군대에게 무기를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데도 결코 식언하지 않았다.

중국 사회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식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다. 옌닝닝(???, 31세)은 중국 학생에게 <한국문학사>를 가르치는 외국어학부 한국어과 선생님이다. 명문 산동대학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산동성 덕주(德州)가 고향이며 행동거지가 분명해 보이는 미혼의 아가씨다. 총명하게 빛나는 작은 눈, 오똑한 코, 카랑카랑한 목소리,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온 몸에 성실함이 배어 있는 생김새다. 원래 수학을 좋아하였다는 이 여선생이 어느 날 상냥하게 말을 건넨다.

“선생님, 언제 밥 한 끼 해요.”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 필자의 아내를 보자 또 반가운 듯,

“사모님, 언제 밥 한 끼 해요.”

한 달 가까이 지났다. 막다른 골목에서 또 만났다. “참, 깜박 잊었네. 언제쯤 식사하면 좋을까요? 이번에는 잊지 않을게요. 적절한 날짜를 정해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리고는 꿩 구어 먹은 소식이다. ‘수학’을 좋아하므로 매사에 빈틈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였다. 결국 그녀와 식사자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자연스레 그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을 많이 겪어 이골이 났는데, 중국땅까지 와서 ‘요조숙녀’에게 같은 일을 또 겪게 돼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그때 그때 이해관계에 민감해진 세태 탓일까.

장쑤성의 농촌 태생인 리빙칭(李氷淸, 27세)양은 인형같은 커다란 눈에, 순박하고 앳된 모습을 하였다. 첫 눈에 감탄하였다. ” 아! 참 착하게도 생겼구나!”

어느 날 그녀와 같이 저녁 먹을 일이 생겼다. 갑자기, 몇 해 전 상하이 변두리에서 혼자 처량하게 ‘롱샤(??)’라고 하는 가재 모양의 ‘물건’을 배터지게 먹던 생각이 났다.

“오늘 저녁 우리 롱샤 먹으러 갈까요?” 라고 하자, “이 곳은 맛있는 집이 별로 없어요. 조금만 참았다가 우리 고향집에 가서 먹어요. 여기에서 두 시간 밖에 안 걸려요. 어머니에게 얘기해 놓을 게요. 사모님 오시면 꼭 같이 먹어요. 제가 초대할게요.”

만날 때마다 비슷한 얘기를 서너 차례 늘어놓다가 슬그머니 그 얘기가 화제에서 사라졌다. 두 어 달 후 아내와 부딪히자, 낯색을 바꾸며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사실 우리 집은 현(縣)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시골 마을이에요. 찾아 가려면 아주 복잡해요” 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금년 4월에도 ‘고장 난 라디오’가 귓전을 두드린다. 국제협력처에 근무하는 류징(劉?, 29세) 아가씨가 “강선생님, 이번 시험 결과에 관계없이 우리 식사 한번 같이 해요. 제가 꼭 밥을 살게요.” 그녀는 몇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선포하였다. 이 아가씨는 두 달 전 쯤 수학 분야 박사과정 시험을 치렀다. 주도면밀한 일처리, 게다가 수학도(數學徒)를 늘 부러워했던 처지라 믿음이 갔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이다. 얼마 전, 귀를 막고 잘 들으려 하지 않는 아내를 억지로 앉혀 놓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왜 이 사람들은 말을 뱉어 놓고, 약속을 안 지키지?”

그러자, 벽창호 같은 필자에게 기세등등하게 두 눈을 부라리며, “아이구! 이 어리석은 양반아! 아직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나. 언제나 철이 들꼬.” 철없는 아내가 오히려 ‘철’ 타령을 한다.

사정이 이러니 앞으로 만나게 될 그 누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어찌 믿겠는가. 중국 땅에서 매일 매일 돈과의 전쟁을 벌이는 한인 중소기업 사장들은, ‘식언하는 사회’ 가운데 살면서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사소한 약속 하나 못 지키는 사람들이 어떻게 큰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한 번 뱉은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도록 하자. 못 지켰을 때는 무릎 꿇고 사죄라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마땅히 ‘선비문화’, ‘유가(儒家)문화’를 받들어 온 양국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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