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뒷골목 새벽시장의 정취
중국 작가 보양(栢楊, 1920~2008)은 1980년대 초반 <더러운 중국인(醜陋的中國人>에서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은 늘 더러운 곳으로 변해 버린다”고 한탄하였다. 중국인들의 태생적 더러움, 비위생적인 습관을 비판한 것으로, 그는 이 책으로 일약 세계적으로 필명을 얻었다. 세계 곳곳에 산재한 중국인 밀집지역을 ‘당인가(唐人街)’ 또는 ‘차이나타운’이라고 한다. 베이징, 상하이, 난징 등의 대도시뿐 아니라 LA의 차이나타운도 더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번화가 뒷골목에는 하수도에서 풍겨나오는 악취가 코를 자극한다. 식당 종업원들은 식용유 찌꺼기, 오폐수를 길바닥에 마구 버린다. 심지어 중국인들이 ‘갑천하(甲天下)’라고 자랑하는 꾸이린(桂林)이나 세계적인 관광도시 쿤밍(昆明)도 예외랄 수 없다.
‘현대중국사 TF팀’이 지은 <한국인이 까뒤집어 본 중국인>(2011)은 일종의 중국생활 체험보고서이다. 이 책의 여러 곳에서도 중국인의 비위생적인 습관을 생동적으로 묘사하였다. 한 부분을 인용해보자.
강의실이나, 콘서트장이나 지하철이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서 아무도 없는 좌석일지라도 중국인 특유의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다. 어째서일까. 옷을 잘 빨지 않고 잘 씻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치질도 잘 하지 않는다.
중국인의 비위생적인 습관을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더러움과 악취가 진동하는 뒷골목에서 인간적인 향수와 그리움이 물씬 풍겨나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여기에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숙소를 나서 새벽시장이나 뒷골목을 돌아보는 것이 일상사가 돼버렸다. ‘금강산도 식후경(人是鐵飯是鋼)’이라고 먼저 허름한 식당(小吃)에 들른다. 이곳에는 기름에 튀긴 찹쌀 도넛, 꽈배기(油條), 콩국물, 순두부, 삶은 계란 등을 판다. 3위안(한화 약 510원) 정도에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한다.
이 식당을 꾸려가는 젊은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아침에 보통 몇 시에 일어나세요?” 라고 물으니 새벽 3시경에는 일어나야 6시경에 손님을 맞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잠은 언제 자느냐?”고 재차 묻자 오후 3시경 두어 시간 잠을 청한다고 하였다. 실로 고단한 이들의 하루다.
민생고를 해결하였으니 발길이 더욱 가볍다. 시장의 모습은 우리의 재래시장이 그렇듯 천태만상이다. 미꾸라지 같기도 하고 뱀 같기도 한 대형 샨위(?魚)를 파는 사람, 쌀과 콩, 그리고 팥 등을 봉고차 뒷문에 쌓아 놓고 파는 사람, 리어카에다 채소를 놓고 파는 52년생 용띠 아저씨, 생닭을 잡아 끓는 물에 집어넣고 털을 뽑고 있는 비쩍 마른 닭장수, 아가미를 쥐고 붕어의 내장을 긁어내고 있는 뚱뚱한 생선장수 아주머니, 야생 자라, 양식 쏘가리 등을 놓고 파는 사람···.
언젠가는 자연산 쏘가리인줄 알고 몇 마리 사가지고 와 매운탕을 끓여 혼자 미친듯이 먹어댔다.
청거북이조차도 돈벌이 대상이다. 마침 한 주부와 장사하는 여인네가 청거북이 몇 마리를 놓고 흥정을 하고 있었다. 흥정이 끝나자마자 이 여인네는 노련한 솜씨로 칼도 사용하지 않고 억센 손톱으로 청거북의 두꺼운 가죽과 몸통을 분리해서 내장을 빼내고 있었다. 활기차게 살아가는 시장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엄숙함, 비장함마저 느낀다.
1위안 짜리 두툼한 신문을 사들었다. 읽고 또 읽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내용이 가득하다. 신문을 접어들고 재래시장을 향해 걸어간다. 문자 그대로 새벽시장은 ‘입추의 여지(立錐餘地)’가 없다. 대형마트들이 있지만 값싸고 신선한 재래시장이 서민들의 구미를 더욱 당긴다. 시장풍경은 한국의 1960~1970년대를 방불케 한다. 고향의 포근함과 그리움을 예서 느껴볼 수 있다.
콩나물 1위안 어치를 샀다. 멸치 넣고 국을 끓이면 세 끼는 문제없다. 우리에게도 콩나물 100원 어치 사면 온 식구가 풍족히 먹던 시절이 있었다. 화덕에 구워서 파는 따끈따끈한 1위안짜리 밀가루 빵은 맛이 담백하다. 만두는 1위안에 두 개 주는 곳도 있다. 1위안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길 한켠에는 4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을 팔고 있다. 가끔 등이 가려워서 눈에 띄면 사려고 벼르던 참이었다. 조악한 제품에 ‘효자손’이라는 글자가 한글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개구쟁이 끼가 발동하여 그에게 짓꿎은 질문을 던졌다. “처음 보는 글자인데 도대체 어느 나라 글자입니까?” 라고 묻자, “하~안~ 궈(韓國)!”라고 자신있게 힘주어 말한다.
3위안이면 단팥죽도 한 그릇 사 먹을 수 있다. 석류나 망과는 한국에서는 꽤 비싼 편이다. 한국에서는 망과 한 개 가격이 2만원 정도 된다. 중국의 그것과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구두를 닦는 데는 2위안이다. 이발가격은 6~8위안 정도이다. 운 좋게 할아버지 이발사를 만나면 원숙한 솜씨로 깔끔하게 잘 다듬어준다.
대형빌딩들이 늘어선 난징 닝하이루(寧海路) 뒷골목 입구와 끝 부분에 공중변소가 두 곳 있다. 골목입구 변소 바로 옆에는 이곳을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사는 ‘움막’이 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변소 바로 옆에서 왜소한 체격의 아주머니는 사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 한 그릇을 들고 먹고 있다.
공중변소 바로 맞은 편,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칼국수와 볶음밥을 파는 허접한 식당이 있다. 문도 없는 식당에서 변소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국수를 먹고 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미국사람인 듯한 금발의 남학생도 눈에 띤다. 그는 뒷간의 ‘향내’를 아랑곳 않고 볶음밥을 맛있게 먹고 있다. 그에게서 중국을 공부하는 ‘프로다운’ 면모가 풍긴다.
아내가 언제부터 내게서 ‘중국냄새’가 난다고 야단이다. 코를 막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이 뒷골목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공중변소 냄새도, 역한 음식 썩은 냄새도 이젠 적응이 된 것 같다. 언젠가 ‘짝사랑했던’ 중국을 떠날 때가 되면 뒷골목에서, 시장바닥에서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냥 그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