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소는 보호해도 개는 안 돼’

지금 브라질 동부지역에서는 40년만의 가뭄으로, 서부 아마존에서는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땅덩어리가 큰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후난(湖南)성은 폭우로, 윈난(雲南)성은 가뭄으로 영일(寧日)이 없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같은 뉴스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된다.

중국 윈난성에 심한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21일 윈난성 후이족 이족 자치구의 한 마을에서 묘족 주민이 물을 길어 나르고 있다. <신화사/Yang Zongyou>

어느 해 늦은 봄날의 얘기다. CCTV 뉴스 전용 채널을 돌리니 낯선 자막이 주의를 끈다.

‘바오니유, 뿌바오꺼우(保牛, 不保狗)’

풀이하자면 ‘소는 보호할 수 있어도 개는 보호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얼핏 봐서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물을 찾아 나서는 윈난성 어느 산골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화면에 비치면서 바로 의문이 풀렸다.

사람 마실 물도 없어 죽을 지경인데 어느 겨를에 개까지 돌볼 수 있겠는가. 이제 개들도 스스로 마실 물을 찾아 나서야 한다. ‘개 신세’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다리(大理), 리장(?江), 샹그리라(香格里拉) 등 관광 명소로 인해 별천지로 알려진 윈난성은 봄만 되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린다. 메마른 하천 바닥에 말라 죽은 미꾸라지를 한 소년이 만지작거린다.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한 고산지대 사람들의 몸부림은 아비규환(阿鼻叫喚)을 방불케 한다. 이 곳은 더 이상 비경(秘境)이 아니다. 광대한 경작지가 바싹 말라 버렸고 거대한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다.

현(?)급 단위에서는 급작스레 ‘오토바이 부대’가 편성됐다. 이들은 50kg들이 물통을 하나씩 싣고, 산간 벽지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러 가파른 산길을 달린다. 소방관들은 몇 개조로 나누어 수원지를 찾기 위해 산속 깊숙이 동굴을 찾아 헤맨다. 현지 사람들은 이를 두고 ‘물찾기 (?水) 운동’이라고 하였다. 어렵게 물줄기를 찾으면 저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고산지대에 사는 부녀자들의 물을 찾아나서는 여정은 고달프기 그지없다. 산 아래 개울까지 내려와 말잔등에 물을 두세통씩 싣고 다시 높은 산을 오른다. 해발 1000m가 넘는 가파른 산 길을 하루 서너 번씩 바삐 오르내린다. 제일 고령자는 이가 다 빠져버린 70세 안팎의 할머니다. 이들을 ‘여마방(女??)’이라 한다. 그나마 말이라는 운송수단이 있어 다행인 편이다.

윈난성 추슝(楚雄)지역 고지대 주민들은 아침 일찍 집단으로 내려와 냇가에서 밥을 해먹고 빨래를 해서 간단히 말린 뒤 물을 어깨에 한통씩 메고 ‘등산길’에 나선다. 발을 헛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다. 열살 가량 되는 어린 소녀도 물 한통 지고 열심히 산을 오른다. 코흘리개 꼬마도 물을 한 병 들고 누나 뒤를 따른다.

물을 구하기 위한 전쟁은 점입가경(?入佳境)이다. 수원지의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산지대 마을 사람들이 로프에 몸을 묶은 채, 산 7부 능선쯤에서 마치 강강수월래를 하듯 빙 둘러있다. 그것도 경사 80도, 거의 직벽에 가까운 곳에서 한 달 남짓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산을 파서 횡으로 수로를 내고 있다. 고층 빌딩에서 유리창을 닦는 사람은 이에 비하면 차라리 낭만적이다.

이곳에서는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에서 보듯 소금처럼 귀한 것이 곧 물이다. 이 물을 ‘생명수(保命水)’라 한다. 윈난성 미륵현(?勒?)에서는 학교에서 위문품으로 받아온 1위안짜리 생수 ‘캉스푸(康?傅)’ 한 병(한화 기준 180원 정도)을 놓고 열 두살짜리 딸 돤리쥐엔(段?娟)과 아버지가 서로 권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한편 신장(新疆)성은 겨울에 내린 눈이 얼어붙어 봄까지도 은세계를 이룬다. 마을 주변에도 눈이 쌓여 4m 높이의 거대한 장벽을 이룬다. 마치 ‘눈의 만리장성’ 같다. 이 장벽 사이로 이리(伊犁) 지역 주민들이 눈에 파묻혔다가 드러난 수백 채의 집을 헐고 있다.

이 일대는 4~5월이 되면 폭설로 쌓인 눈이 녹아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녹은 눈을 ‘융설(融雪,녹은 눈이 홍수로 변함)’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광풍을 동반하여 마을과 초원을 쓸어버린다. 마을 주민들은 어차피 초토화될 바에야 미리 집을 부숴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쓸만한 목재 등을 골라서 싣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 준비를 한다. 한쪽에서는 물이 귀해서 난리고, 한쪽에서는 물이 넘쳐서 난리다.

계절의 여왕 5월, 후베이(湖北)성에서는 때아닌 폭우로 3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후난성에서도 장대비가 쏟아져 거리와 가옥이 온통 물에 잠겼다. 윈난에서는 반년째 계속된 가뭄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때아닌 물난리로, 가뜩이나 살림이 팍팍한 서민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쓰촨성 원촨(汶川)대지진 때 TV 화면에 비친 한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지진 가운데 살아남은 네 사람이?굵은 대나무 막대기 두 개에 냉장고를 묶어서 메고 가파른 산을 내려 오는 모습이다. 잿더미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중국 민초들에게서 진한 삶의 무게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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